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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극적으로 ‘1965년 체제’ 대체 가능한 새로운 관계 절실하나 당장은 한·일 정상 간 대화가 먼저 
징용자들의 배상금을 대신 받았던 한국 정부는 그간의 불충분한 대응에 대해서도 국민 앞에 솔직하게 반성을 


1965년 한·일 수교(65체제)와 함께 체결한 기본조약과 청구권협정 등 4개 협정은 한·일 합병의 불법성과 식민지 지배에 대한 일본 책임을 명확하게 지적하고 있지 않다. 그 때문에 청구권협정은 사실상 ‘경제협력협정’이 되고 말았다. 당시 박정희 정권이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안착을 위해 일본의 경제 협력과 자금 지원을 중시한 결과다.

기본조약의 태생적 한계 탓에 이후 양국 관계는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양국은 경제적으로 함께 성장했고, 특히 가치를 공유하는 이웃이라는 데 공감하고 그에 걸맞은 협력도 있었다. 거듭되는 갈등 속에서도 양국 정부와 시민사회는 ‘한·일의 바람직한 미래’에 대한 기대를 거두지는 않았다.

그러나 지난달 30일 대법원 판결로 65체제는 뿌리째 흔들리는 위기를 맞았다. 대법원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신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재상고심에서 개인청구권을 인정하고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당장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판결은 국제법에 비춰봤을 때 있을 수 없는 것”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국가 대 국가로서 체결해서 만든 65체제를 인정하지 않는 판결이 어떻게 나오느냐는 것이다.

이번 판결은 65체제의 기본 인식과 달랐다. 무엇보다 개인청구권을 인정했다. 또한 일본 국가권력이 개입한 반인도적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는 위자료의 성격이라고 못 박았다. 즉 청구권협정에는 주로 임금 등 미지급금 등에 대한 손해배상을 다뤘는데 불법행위에 대한 위자료 문제는 그와는 전혀 다른 사안이라는 주장이다.

반면 청구권협정은 “양국과 그 국민의 재산·권리 및 이익과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을 확인한다”(2조)로 돼 있다. 일본이 그간 징용자, 위안부, 피폭자 등의 배상 요구가 나올 때마다 금과옥조로 내세웠던 방패조항이다. 그런데 대법원은 기존 청구권의 범주를 뛰어넘는 손해배상 조항을 인정했다.

일본도 90년대까지만 해도 개인청구권을 인정했다. 91년 8월 27일 일본 참의원 예산위원회에 출석한 야나이 슌지 당시 외교부 조약국장은 “청구권협정에서는 어디까지나 ‘외교적 보호권’(자국민이 외국에서 부당한 취급을 받았을 때 자국 정부가 상대국을 상대로 배상을 요구하는 국제법상 권한)을 포기했을 뿐 개인청구권은 소멸되지 않는다”고 해석했다. 이는 청구권협정에서 한반도에 두고 온 일본인 자산에 대해 일본 정부가 불문에 부치기로 한 만큼 한국 정부에 배상을 요구할 수 없으나, 개인청구권은 인정되니 한국에 직접 소송을 걸라는 뜻이었다. 그랬던 일본 정부는 이후 태도를 바꿔 징용자들에 대해서는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며 모르쇠로 일관해 왔다.

한국 정부의 애매한 태도도 문제다. 65년 당시 정부는 103만여명의 강제징용자를 상정하고 그들을 대신해 배상금을 일본에 요구한 끝에 유·무상 5억 달러를 받았다. 이로써 청구권 배상 책임은 한국 정부로 넘어왔다. 실제로 정부는 74년 ‘대일민간청구권보상법’을 제정해 일부 징용자에 대한 배상을 실시했다.

2005년 노무현정부도 같은 입장이었다. 위안부, 피폭자, 사할린 잔류 한국인 문제는 예외로 하되 징용자 배상 책임이 한국 정부에 있음을 재확인했다. 징용자들의 배상금을 대신 챙긴 정부는 그럼에도 대일 배상을 주장하는 그들의 한 섞인 주장에 귀 기울이는 데 소극적이었다. 이번 판결도 이미 6년 전 대법원 판결이 나온 것이기에 결과가 빤했지만 준비된 대응은 전혀 없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가뜩이나 위축되고 있는 한·일 관계를 최악으로 내몰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이참에 아예 65체제를 폐하고 새로운 틀을 마련해야 하나. 65체제가 근본부터 흔들리는 데다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탓에 갈등이 반복적으로 이어져온 만큼 문제의 근원을 해결하는 데 초점 맞추자면 양국 관계는 재구축하는 게 맞다.

하지만 쉽지 않다. 65체제 폐기에 대한 정부의 굳은 의지와 치밀한 전략이 없다면 당장은 수습이 먼저다. 양국 정상이 가급적 빨리 만나 현 사태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얘기하고 출구를 찾아야 한다. 오는 30일 아르헨티나에서 열리는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를 활용해봄직하다. 돌아서서 비난만 하기보다 해법 모색이 우선이다.

삼권분립의 민주주의에서는 사법부와 행정부의 견해가 다를 수 있다. 따라서 이번 판결도 존중돼야 마땅하며, 문 정부가 위축될 필요는 없다. 다만 아무런 주장도 펴지 않고 시간만 끌면 일본의 비난 프레임에 되레 말려들 수 있다. 아울러 그간의 불충분한 대응에 대한 솔직한 반성도 필요하다. 궁극적으로는 65체제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한·일 관계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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