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이야기] 자연과 조화 이룬 `염치의 美`
◆건축명인을 찾아서 / (10) 배병길 도시건축연구소 대표◆

배병길 도시건축연구소 배병길 대표(51)의 모습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건축가의 이미지와 조금 다르다.

매스컴에서 비쳐지는 세련되고 도회적인 건축가라기보다는 끊임없이 고뇌하고 사색하며 성찰하는 철학자나 구도자에 가깝다.

경북 김천의 뿌리 깊은 유학자 집안에서 태어났고 하이데거에 심취했으며, 자연을 타자로 삼아 인간으로부터 분리한 모더니즘의 극복을 항상 고민하고 있는 그다.

`염치의 미학`. 그가 건축작업을 할 때 항상 손에 쥐고 있는 화두다.

"염치라는 건 삼갈 줄 알고 부끄러워할 줄 아는 것입니다 . 타자에 대해 삼갈 줄 알고 자신을 되돌아보고 그를 통해 절제하려 하고, 나아감과 물러남을 생각하는 것이죠. 염치의 미학이란 건축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되 타자와의 상호의존성을 깨닫고 이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

언뜻 건축과 연관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의 설명을 들어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가 말하는 타자, 염치와 배려의 대상이 되는 것은 자연이다.

인본주의와 모더니즘이 지배한 근세 서구에서 자연은 인간의 언제나 대척점에 선 타자에 불과했다.

늘 거기 있는 것이고, 언제나 인간이 마음먹으면 편할 대로 이용하고 개발하고 파괴해도 되는 존재였다.

하지만 그 같은 사고방식의 후유증은 우리가 익히 아는 바다.

무분별한 산업화로 인한 환경파괴는 이미 지구촌의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로 떠올랐다.

"서구에서는 이미 100년 전부터 그 같은 모더니즘에 대한 자기반성이 일고 있습니다 . 하지만 우리에게는 자연과 인간이 둘이 아니라는 사상적 전통을 이미 가지고 있습니다 . 선조들의 자연관ㆍ인간관을 건축에 접목해야 할 때입니다 ."

그가 주목한 것은 관계성. 자연과 환경, 인간은 독립된 개체가 아닌 상호 의존적 존재다.

겉으로 보기에는 연관 없어 보이는 만물이 서로 얽혀 있고 상호 연관을 미친다는 것이다.

힌두교의 인드라망이나 불교의 연기설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이를 이해하고 양자 간의 균형을 바탕으로 했을 때 진정 인간이 환경을 파괴하고 자연이 다시 인간을 역공하는 악순환을 끊을 수 있다.

그때의 이익은 결국 자연이 아닌 인간에게 돌아온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최근 서구 건축계에서 최대 이슈로 떠오른 그린 빌딩(Green Buildingㆍ친환경 건축)은 그의 이 같은 철학과도 맞닿아 있다.

사실 그의 이 같은 철학은 최근 몇 년 사이 정립된 것이다.

예전에는 그 역시 넘치는 창작열을 주체하지 못하며 건축미학과 독창성 등의 가치를 중시했다.

90년대 중반에 지은 서울 삼청동 국제화랑이 대표적 작품이다.

건물이 처한 컨텍스트의 문제보다는 자체의 차별성에 더 중점을 뒀다.

자기주장과 색깔을 자유롭게 표현해 건물 자체를 하나의 트레이드 마크로 삼고 싶은 욕심에서였다.

과감한 색채와 자유분방한 공간 구성, 비틀어진 듯한 파격적 형태 등으로 당시 국제화랑은 건축계에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이후부터 그의 작품세계는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다.

건축과 자연ㆍ환경, 인간의 관계성에 좀 더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과거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의 건축관이 진화하고 있다고 보는 게 옳다.

경기 의왕의 반남 박씨 종가인 `학의제`는 자연과 건축의 경계를 허물어 버렸다.

뒷산에서 이어진 바위가 집안을 거쳐 앞마당으로 이어진다.

현관에서 거실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집안에 들어오거나 유리창 밖으로 보이는 자연을 거친다.

담장은 돌담이다.

경계는 있으되 폐쇄적이지 않다.

담장 속으로 바람이 넘나들고 위로는 햇살이 오간다.

집은 곧 자연의 일부다.

그는 "어떻게 전개될지 모를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공간은 지극히 무성(無性)적이고 자신의 성격을 최소한 드러내야 한다"며 "자신의 등을 빌려주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서구의 기술ㆍ합리성과 이를 조화시키는 게 궁극적 목표"라고 말했다.

■ 배병길 대표는

= 배병길 대표는 경북 김천에서 태어나 중앙대와 미국 UCLA 건축ㆍ도시설계 대학원에서 수학했다.

국내에서는 건축가 김중업과 김원을 사사했고 해외에서는 멕시코 현대건축의 대부인 히카르도 레고레타와 미국의 프랭크 O 게리, 찰스 W 무어 등을 스승으로 삼았다.

아파트나 주상복합 같은 상업적 건물보다는 삼청동 국제화랑, 갤러리 현대, 중광 예술촌, 은둔의 집, 수도원 묵당, 학의제 등 문화ㆍ예술ㆍ종교ㆍ공적 건축물들을 많이 남겼다.

제10회 경기도 건축문화상, 2005년 한국건축가협회 특별상, 제7회 대한민국 환경문화상, 제17회 한국건축가협회 건축 작품상, 제4회 서울시 건축상 등을 수상했다.

한국건축가협회 감사, 공공디자인학회 공공 공간디자인 전문위원장 등을 역임하거나 맡고 있다.

[이호승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배병길 동문은 중앙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였으며, 90년대 국내에 처음으로 해체주의를 시도하였고 일본의 유명건축사이트에 세계의 건축물85에 배병길동문작품인 국제갤러리가 선정되기도하였다.


Kukje Gallery
Bae, Byung-Kil 韓国 ソウル市
キョンボックン(景福宮)のすぐ近くにあるギャラリーとレストランです。
ギャラリーとレストランは二つの建物であり、それらをつなぐ部分をガラスボックスにしている。
ガラスボックスの一階部分はエントランス、二階部分はレストランのテラスのような空間と
なっている。なぜか屋根の上には人の人形が。。 '0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