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보린 신화의 주인공 삼진제약 CEO 이성우 동문

관리자 | 조회 수 2347 | 2007.08.30. 11:21
‘선택과 집중으로 신약 개발 박차’
이성우 삼진제약 사장
창사 후 39년 동안 단 한 번도 거르지 않고 흑자를 낸 기업이 있다. 그것도 단순히 흑자를 내는 데만 그친 게 아니다. 지난 2000년 이후 6년 연속 순이익이 매년 평균 94.19%나 증가했다. 놀라운 것은 이뿐만 아니다. 이 회사는 1976년부터 주5일 근무제를 선구적으로 도입하기도 했다. 바로 삼진제약이다. 삼진제약은 제약 업계에서도 작지만 탄탄한 ‘알짜 기업’으로 손꼽힌다. ‘맞다! 게보린’이라는 광고 카피로 유명한 해열 진통제 ‘게보린’이 이 회사의 대표 상품이다. 지난해에만 164억 원어치가 팔려나간 게보린은 올해로 출시 30년째를 맞았다. 이성우 삼진제약 사장(62)은 1977년 스위스에서 처방전을 들여와 게보린이라는 ‘빅 히트’ 상품을 탄생시킨 주역이다.

게보린이 나온 지 벌써 30년이 됐군요.

30년 전에는 삼진제약의 규모가 굉장히 작았습니다. 다국적 제약사들이 대부분 들어와 있었고 대형 업체로는 종근당과 유한양행이 있었지요. 당시에는 ‘두통약 하면 사리돈’이었어요. 그만큼 시장점유율이 압도적이었습니다. 사리돈은 원래 스위스의 로슈 제품인데, 종근당이 판권을 갖고 공격적으로 영업을 했어요. 삼진제약에서도 신제품을 내놓기는 했는데 워낙 회사 규모가 작을 때라 처음에는 도저히 경쟁이 안 됐어요. 그러던 게 이정도로 클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반전의 계기가 궁금한데요.

제품을 내놓고 영업을 해보니 어렵기는 했지만 자신감도 생겼어요. 사리돈 먹던 사람들이 작은 회사 것인 데도 우리 제품을 한 번 먹어보고 재구매하는 비율이 높게 나타났어요. 그걸 보고 품질만큼은 경쟁력이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됐죠. 그래서 광고를 하고 싶은데 도저히 여력이 없었어요. 그러다 문화방송에서 김동완 기상캐스터가 날씨 예보를 처음 시작했는데 스폰서를 찾지 못해 광고 단가가 굉장히 싸게 나왔어요. 이 소식을 듣고 바로 광고를 시작했지요. 약효 확실하고, 거기에다 광고도 나가니까 매출이 급상승하기 시작했어요. 다른 업체들은 처음에는 경쟁 상대가 아니라고 거의 주목하지 않았는데, 1~2년 지나면서 비상이 걸렸어요. 대형 업체들이 줄줄이 신제품을 쏟아내고 공격적인 영업에 나섰지만 성공하지 못했지요.

성공 비결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마케팅의 성공이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저는 생각이 다릅니다. 무엇보다 약효가 우수했기 때문에 성공한 것이라고 봐요. 처방 자체가 굉장히 훌륭했어요. 또 작은 회사였지만 뛰어난 기술진이 있었고 남다른 제품을 만들어 내려고 많이 노력했어요. 제품이 좋으면 소비자들이 찾게 됩니다. 바꿔 말하면 많이 팔린 제품이 우수한 제품이라는 말도 됩니다. 그만큼 소비자들의 검증을 받았기 때문이지요. 지금도 광고, 마케팅만 잘해서는 단명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어요. 소비자들은 한 번 속지 두 번 속지는 않거든요.

회사의 전체 매출 구성은 어떻습니까.

게보린이 전체 매출의 15% 정도 차지합니다. 한때는 40% 이상 될 때도 있었지요. 하지만 회사의 외형이 커지면서 게보린의 비중이 많이 줄었어요. 약품은 크게 게보린 같은 일반의약품과 전문의약품으로 나눌 수 있는데, 전문의약품 쪽을 계속 키우고 있습니다. 진통제는 다른 약품과 달리 시장 확대에 아무래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지요. 영양제는 누구나 다 먹지만 진통제는 아픈 사람만 먹는 제품이에요. 제약사 입장에서는 어느 수준에 이르면 매출을 늘리기가 쉽지 않은 거죠.

39년 동안 흑자 행진을 이어가고 있는데요.

모두 직원들이 열심히 해 준 덕분이지요. 며칠 전 부산에 갔다 ‘삼진제약은 크지 않으려고 해도 크지 않을 수 없는 회사’라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8월 초 1주일간 전 직원이 일괄 휴가를 갔는데, 그때 영업하러 다니는 직원이 있더라는 겁니다. 깜짝 놀라서 ‘전체 휴가 중 아니냐’고 물었더니 ‘이 시기를 놓치면 영업을 하지 못한다. 그래서 나왔다’라고 하더랍니다. 그 말을 듣고 삼진제약이 빨리 크는 이유가 있구나 싶었다는 거죠.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직원만 그런 게 아니었어요. 이런 것들이 삼진제약의 힘이라고 생각해요.

6년째 무교섭으로 임금 협약을 맺었는데요.

노사 간에 신뢰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겁니다. 2001년 사장에 취임하면서 보니까, 임금 협상이 보통 1월에 시작해 6월까지 가더군요. 그래서 나중에 인상분을 소급해 주곤 해요. 이건 쓸데없는 낭비라고 생각했어요. 노조 간부들을 만나 ‘회사 여건이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 최대한 배려할 테니 믿고 따라 달라. 그래도 부족한 게 있으면 말해 달라’고 말했어요. 첫해 해보니 직원들도 모두 만족했어요. 영업 실적도 좋아져 연말에 성과급을 지급했는데 정말 좋아하더군요. 그렇게 시작해서 큰 문제없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죠. 회사 쪽에서도 ‘어떤 걸 더 해줄 수 있나’라고 항상 고민하고 노력합니다.

직원 구두를 무료로 닦아준다고 하던데요.

한 번은 구두가 더러워 닦으려고 하는데 밖에 나가는 게 참 번거롭더군요. 직원들은 더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특히 영업 사원들은 새벽에 출근해 밤늦게 퇴근하기 때문에 한마디로 구두 닦을 시간도 없어요. 그래서 1주일에 한 번 원하는 직원들의 구두를 닦아주고 있어요. 큰돈 들어가는 일은 아니지만 직원들이 아주 좋아합니다. 요즘은 영업사원들의 바지를 다려 주는 건 어떨까, 고민하고 있어요.

신약 개발 성과는 어떻습니까.

신약은 삼진제약이 오래전부터 관심을 기울여 온 분야입니다. 20년 전에 중앙연구소를 세운 걸 비롯해 꾸준하게 투자해 왔어요. 우리가 개발한 항바이러스 신물질 피리미딘디온은 지금까지 알려진 항바이러스 물질 가운데 가장 안전하고 강력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어요. 현재 미국 신약 개발 업체인 임퀘스트에 기술을 이전해 상품화가 진행 중입니다. 항암제나 당료 치료제 쪽에서도 상당한 성과가 나오고 있지요. 연구소에 항상 주문하는 게 선택과 집중이에요. 자꾸 이것저것 할 게 아니라 빨리 상품화가 가능한 쪽으로 집중하자는 거죠.

업계에서 대형화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는데요.

기본적으로 대형화가 필요한 것은 맞아요. 다국적 제약사들은 인수·합병(M&A)으로 엄청난 세 불리기를 하고 있죠. 그래야 수조 원이 들어가는 신약 개발을 할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M&A가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에요. 외국 제약사들은 대부분 나름대로 강점과 특성을 갖고 있어요. 반면, 국내는 거의 제네릭 중심이고 제품이 다 겹칩니다. M&A를 해 시너지를 내기 어려운 구조예요. 물론 영업력이 커지는 효과는 있겠죠.

제약 산업 발전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뭔가요.

가까운 일본만 해도 상당한 규모의 세계적인 제약사를 여럿 갖고 있어요. 반면, 제약 산업의 역사가 비슷한 데도 우리는 여전히 영세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지만 제약 산업을 산업 자체로 키우려는 노력이 먼저 필요하다고 봐요. 그동안 정부는 제약 분야를 항상 서민 생활과 연결해 접근했어요. 게보린만 해도 30년 전 출시할 때 처음 가격이 100원이었는데 불과 몇 년 전까지도 그 가격 그대로였어요. 이제는 이런 식의 직접적인 가격 통제가 사라졌지만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어요. 요즘은 건강보험 재정 문제가 최우선이지요. 그러다 보니 제약 산업이 클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스러워요. 국내 제약 업체들도 엄청난 신약을 개발해 내고 전체 산업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충분히 갖고 있다고 봐요.

저출산 고령화의 영향은 어떻게 보십니까.

현재 소아가 감소하고 고령자들이 늘어나는 급격한 변화가 진행 중입니다. 이는 의약품에 대한 수요가 계속해서 증가한다는 걸 의미하지요. 나이가 들면 어쩔 수 없이 몸에 이상이 찾아오고 만성질환에 시달리게 됩니다. 의약품이 필요한 분들이 늘어나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저출산 고령화라는 인구 구조의 변화는 제약 산업에는 새로운 성장의 기회인 셈이죠.

약력: 1945년 경기 가평 출생. 71년 중앙대 약대 졸업. 71년 일동제약 입사. 74년 삼진제약 영업부장. 86년 영업담당 전무. 93년 영업담당 부사장. 2001년 삼진제약 사장(현).

정리=장승규 기자 skjang@kbizweek.com|인터뷰 = 김상헌 취재편집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