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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래(경제78) 국민일보 편집인

“한반도 문제는 미·중 역학관계 감안, 발상 바꿔서 인류공통의 가치로 대응해야”
 
‘햇볕은 뜨겁지 않았고 채찍은 아프지 않았다’는 지난 1월 8일자 국민일보 1면 기사 제목이었다. 북한의 4차 핵실험 직후 대북정책의 총체적 실패를 꼬집은 기사다. 그러나 뜨뜻미지근한 정책만 탓할 수 없다. 주변국들, 특히 미·중의 이해관계와 깊이 맞물려 있어서다. 
 
탈냉전 후 한반도는 되레 냉전구도가 고착화되고 있다. 미·중 대립과 함께 양국은 한반도의 분단구조를 적절히 활용하려는 입장에서 매우 공통적이다. 중국은 북한을, 미국은 한국을 미·중 대립의 최전선으로 묶어두려 한다. 중국이 북한 제재에 소극적이거나 미국이 한국에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인 사드 배치를 강조하는 것도 이 구도와 무관하지 않다. 

중국은 북한 붕괴를 원치 않으며, 미국은 분단구조를 빌미로 중국의 턱밑에 있는 주한미군 기지의 존재에 집착한다. 이러한 미·중의 한반도 경략을 외면한 채 북한 위협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그 어떤 대북정책도 빛을 보기 어렵다. 

우리의 한반도 비전은 북한은 물론, 미·중의 이해 다툼을 감안해야 옳다. 북한과 미·중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북한에 대해서는 그들이 바라는 바에 대해 귀를 기울이는 노력이 그 시작이 될 것이다. 다만 미·중과 관련해서는 훨씬 어렵고 복잡하다. 한쪽을 편들 수도 없고 그렇다고 양쪽 모두와 적대 관계가 돼서도 안 된다.

그간 한국도 자주외교, 등거리 외교 등을 강조해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 모두가 수사(修辭)에 불과했고 구체성은 부족했다. 강대국과의 관계에서, 더더구나 분단 대립 중인 상황에서 한국이 목소리를 내기란 쉽지 않았을 터다. 결국 주변을 제대로 설득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를 타개하자면 이제까지와는 다른 원칙과 전략이 필요하다. 

‘핵 폐기를 전제로 한 대북 지원·협력’과 같은 말만 앞세우는 부작위(不作爲)의 원칙이 아니라 누구도 외면하지 못할 인류 공통의 가치를 담은 원칙이 필요하다. 강한 자와 맞서 이길 수 있는 것은 힘이 아니다. 그렇다고 읍소가 통할 리도 없다. 판을 바꾸는 지혜, 감히 훼손 못할 가치의 선점이 절실하다. 그 효과는 역사가 증언한다.

1960년대 마틴 루서 킹 목사는 모두가 공감하는 주장으로 흑인인권운동의 새 장을 열었다. “내게는 꿈이 있습니다. 이글거리는 불의와 억압이 존재하는 미시시피주가 자유와 정의의 오아시스가 되는 꿈입니다.” 그가 외치자 사람들은 따랐고 흑백공존의 가치가 피어났다. 

반면 동시대의 흑인해방운동을 이끌었던 맬컴엑스는 급진노선 탓에 배타적 한계성을 지닐 수밖에 없었다. 말년에서야 그는 인종 간 평화를 역설했다. 하지만 여전히 급진주의자로 기억된다. 두 사람은 모두 살해당해 아쉽게 생을 마감하지만 킹 목사의 꿈은 지금도 미국은 물론 전 세계의 보편적 가치로 기억된다. 60년대 등장한 미국의 차별방지법은 그의 공로다. 

가치선점 투쟁은 우리 역사에도 있다. ‘정의·인도·생존·번영을 위한 거족적 요구’로서 ‘최후의 1인까지 최후의 순간까지 민족의 정당한 의사를 추구’했던 3·1독립선언이 그것이다. 비폭력 무저항의 함성은 무기력한 듯 보이지만 거부할 수 없는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기에 끝내 빛을 낸다. 3·1정신이 없었다면 독립을 향한 열망은 지워졌을 터다. 같은 이치로 작금의 대북 강공세가 한반도에 평화를 가져다줄 것이라고는 결코 기대하기 어렵다.

지금이야말로 한반도에 평화를 선포해야 할 때다. 힘과 증오로는 난제를 못 푼다. 우리가 바라는 평화는 ‘팍스로마나’처럼 강대국의 힘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한반도의 모두가, 주변국들과 스스로 공존하는 궁극적인 평화, 즉 ‘샬롬’이어야 한다. 샬롬 선포와 실천은 분단된 이 땅에 주어진 가시관이자 은혜다.

조용래(경제78) 국민일보 편집인 jubi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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