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든 갈등구조 해소해, 파산 국면에 이른 우리 사회의 공동체성부터 회복해야”

국민일보
입력 2016-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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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개혁, 구조조정으로 떠들썩하다. 둘 다 기존 틀을 바꾼다는 점에서는 같다. 어떻든 한국 경제가 다시 벼랑으로 내몰리고 있다. 그 이면에 천문학적 규모의 혈세 투입, 분식회계, 낙하산 인사 등이 뒤섞여 있어 공분이 끓어오른다.

구조개혁 이슈는 솔직히 말하면 개인적으로도 달갑지 않다. 논설실로 첫 보임을 받은 1998년 7월, 외환위기 직후라서 신문 1면 머리는 늘 경제이슈였고 논설·칼럼의 주제 또한 구조개혁 관련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개혁의 당위성과 느슨함을 따지는 게 일상이었던 그 시절이 재현되는 지금 참담함과 불안감은 증폭되고 있다.

게다가 구조개혁은 꽉 막힌 뭔가를 연상시킨다. 외환위기 당시 고비용·저효율의 부패·부실과 작금의 조선·해운업계의 급락 상황이 별로 다르지 않다는 점 때문이다. 지난 외환위기의 경험은 철저히 묵살됐다. 노사 간 불신, 무책임 경영, 부실 은폐, 정치권의 마구잡이 개입은 놀랍도록 비슷하다.

기업 경영실적은 대내외 영업환경의 영향을 피할 수 없기 때문에 늘 경계해야 한다. 실적이 좋다 하여 방만해져서도 안 되고, 거꾸로 악화될 경우는 곧바로 적절한 대응이 요청된다. 상시 구조조정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예컨대 조선업계의 경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유가가 폭락하고 수주가 급감하면서 위기를 맞았다. 상시 구조조정 체제가 작동됐더라면 바로 인력·장비·사업부문 등의 조율이 이뤄졌을 것이다. 그런데 경영진은 구조개혁보다 해양플랜트라는 새로운 부문에 역량을 집중·확장하는 쪽을 택했다. 그게 화를 불렀다. 해양플랜트 관련 부문에 대한 충분한 기술력과 노하우 축적 없이 뛰어든 탓이다.

초기에는 저가 수주 덕분에 수주가 늘고 매출을 키워 득의양양이었다. 정부조차 해양플랜트를 2013년 신성장동력으로 지정하고 대규모로 지원했으나 2014년부터 적자로 급반전됐다. 사실 해양플랜트는 마치 도깨비방망이라도 되는 양 한국 업계에서만 쓰는 용어다. 그 정도로 조선업계는 무모했다.

왜 그리 덤볐을까. 경영진이 다 낙관적이고 도전적이지는 않았을 텐데. 반짝 성과를 바라고 저가 수주를 노렸을 수는 있었겠다. 아니 인력 구조조정을 피하려는 어쩔 수 없는 방편이었을까. 일자리 타령하는 정부 눈치도 봤을 테니. 강성노조를 설득하고 협상을 통해 구조개혁을 추진하기보다 낯선 해양플랜트 분야를 선택하는 게 더 낫겠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 또한 외환위기 때의 갈등구조를 떠올리게 한다. 당시 위기가 터지자 국제자본들은 글로벌 스탠더드를 앞세워 눈엣가시인 한국의 재벌과 강성 노조를 다잡으려 했다. 자본시장 개방 확대와 정리해고 제도의 요구가 그것이었다. 덩달아 대기업들은 이를 계기로 노조 무력화를 꾀했고 노동계는 재벌개혁, 재벌해체론을 폈다. 노사는 서로를 못 믿었다.

이후 국제자본의 주장은 상당히 관철됐으나 재벌개혁은 말뿐이었고 노동계의 투쟁행태는 되레 강화됐다. 게다가 수출 환율 금리 등 몇 가지 경제지표가 정상화되자 정부는 이를 과시하듯 외환위기 극복을 서둘러 선포했다. 그렇게 구조개혁은 종결됐다. 사실상 실패였다.

조선 사태는 무엇보다 해당 부실기업들의 경영책임이 크다. 다만 그 근원은 훨씬 깊고 넓다. 노사 간 뿌리 깊은 불신과 갈등, 끼리끼리의 배타문화, 문제 회피 관행, 해결수단 부재, 배려 상실 등을 꼽지 않을 수 없다. 이렇듯 우리 사회가 공동체로서는 이미 파산 직전이다.

갈등구조 극복이라는 공동체 회복이 전제되지 않은 구조개혁은 또다시 흐지부지될 수밖에 없다. 제3, 제4의 파산과 함께 허접한 구조개혁의 만성화를 부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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