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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래(경제78) 칼럼] 소명감 없는 후보가 역사 그르친다

“베버도 열정·책임감·균형감각을 갖춘 정치 바랐음에도 히틀러의 등장 막지 못했다”

 

글쎄 솔직히 잘 모르겠다, 누굴 뽑아야 할지. 질질 끌던 선거구 획정에 엉망진창 지리멸렬의 공천, 그리고 이어지는 읍소형 선거유세. 대로에서 큰절을 하며 무릎을 꿇는 후보들이 넘치지만 보는 쪽은 심란하다. 지난 주말 지푸라기라도 붙들겠다는 마음으로 낡은 책 한 권을 펼쳐 해법을 찾아봤다.

막스 베버(1864∼1920)의 ‘직업으로서의 정치(전성우 옮김)’다. 그가 1919년 1월 28일 독일 뮌헨대학 자유학생연맹의 강연에서 발표한 원고를 다듬은 것이다. 그의 최후 저작으로 대의민주주의 하에서 직업 정치가가 어떤 자질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 주로 거론하고 있다.

독일어로 ‘직업(Beruf)’은 하늘로부터의 ‘소명(召命·calling)’이란 뜻도 있고 실제로 베버가 정치를 직업 이상의 소명으로 봤음을 감안하면 ‘소명으로서의 정치’란 표현도 가능하겠다. 당시 독일은 1차 대전의 패전국으로서 혼란이 넘치고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넘치는 상황이었기에 베버는 소명을 다하는 정치를 사뭇 기대했던 것 같다.

전쟁의 끝자락이던 1918년 10월 29일 킬 군항 독일 수병들의 반란으로 노동자·병사평의회가 만들어지고 11월 9일 국왕 빌헬름 2세의 망명과 이어지는 휴전협정으로 사실상 독일제국은 붕괴된다(독일 11월 혁명). 이로써 정국은 군부를 비롯한 옛 제국의 잔존세력, 사회민주당 중앙당 민주당 등 의회 내 온건정치세력, 급진좌파혁명세력 등이 할거하는 상황으로 바뀐다.

그 와중에 군부와 손잡은 사민당은 제국권력을 이양 받아 혁명정부를 발족시키고 새로운 헌법을 만들기 위한 제헌의회 선거를 1919년 1월 19일 실시한다. 선거는 온건정치세력의 부상으로 귀결되고 마침내 그해 8월 14일 헌법이 공포된다. 바이마르공화국의 탄생이다.

베버의 강연은 정확하게 제헌의회 선거 직후에 이뤄졌다. 절체절명 위기의 때에 행여 독일의 미래가 파국으로 빠지지나 않을까 우려하는 분위기가 강연 곳곳에서 느껴진다. 그는 특히 급진혁명세력이나 진보지식인들을 향해 ‘비창조적(불모의) 흥분상태’에 빠져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다. 비창조적 흥분상태란 무언가 열정이 있기는 하지만 “아무런 결과도 낳지 않으며 또 어떠한 객관적 책임의식도 내포하고 있지 않다”는 뜻이다.

베버는 정치가에게 결정적으로 중요한 세 가지 자질, 즉 ‘열정·책임감·균형감각’을 요구한다. 특히 균형감각에 대해서는 “내적 집중과 평정 속에서 현실을 관조할 수 있는 능력, 사물과 사람에 대한 거리를 둘 수 있는 능력”이라고 요약한다. 이 거리감에 익숙해지는 것이 “비창조적 흥분에만 빠져 있는 정치적 아마추어들로부터 구분하는 자질”이라고 본다.

거리감은 당연히 정치가 자기자신에 대한 거리감도 포함돼 있다. 그것은 객관성의 문제와 관계가 깊다. 거리감의 상실은 곧 객관성의 결여로, 또한 무책임성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이런 모든 조건에 더하여 베버는 신념 또는 이념, 즉 직업정치가가 되려고 했던 당초의 대의를 갖춰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하지 않았다. 한 위대한 사회과학자의 성찰을 통해 속물근성에 빠지기 쉬운 직업정치가들이 갖춰야 할 바는 꼼꼼히 제시됐지만 이후 독일의 역사는 참담함으로 전개되기 때문이다. 바이마르공화국은 끝내 바로 서지 못했으며 되레 히틀러·나치가 주도한 제3제국의 한갓 마중물로 전락하고 만다. 이같은 상황은 정치인만을 탓할 수 없다는 점에서 지금 우리가 직면한 문제와 중첩된다.

나의 한 표가 우리의 미래를 좌우하고 역사의 부침을 가른다. 거의 한 세기 전에 제시됐던 베버의 성찰이 지금 이 땅에서도 마찬가지로 요청되는 이유다. 소명의식 있는 후보를 찾아보자. 그리고 투표하자.

조용래 편집인 jubi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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