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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 60세법은 부작용과 보완점을 제대로 논의하지 않고 밀어붙이는 바람에 노사 간 시빗거리 떠안겨 
文정부조차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 노동 관철 등을 마치 고지만 점령하면 된다는 식으로 매달린다 


압축성장, 전후 독립과 산업화·민주화 달성 등은 한국을 설명하는 주요 키워드다. ‘빨리빨리’를 입에 달고 사는 한국인들의 성품과 무관하지 않다. 이른바 1960·70년 개발연대의 유산인데 문제는 그 이면에 똬리를 튼 부(負)의 유산이다.

부의 유산은 민주화 원년인 87년 민주항쟁 이후 몇 번의 정권교체를 통해 꾸준히 문제 제기돼 왔다. 하지만 본질적인 변화는 이루지 못했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지금 ‘87년 체제 극복론’이 쏟아지는 게 그 증거다. 개발연대식 사고에 더해 민주화 시대를 거치면서 부의 유산은 되레 부풀려지고 말았다.

소통 부재, 대화·타협 부족, 대립·갈등 심화 등 우리 사회의 고질은 개발연대의 밀어붙이기식 행보에서 시작됐을 것이다. 단기 성과주의를 최고의 가치로 내세워 강한 추진력으로 재빠르게 대응한 불도저들이 사회 도처에서 성공사례를 남기면서 자연스럽게 미화되고 고평가됐던 이면의 모습이다. 그들에게 상대 배려는 안중에 없었다.

민주화 과정에서도 노선의 선명성을 주장하고 관철시키는 데는 개발연대식 몰아세우기가 효과적이었을 터다. 역시나 상대에 귀 기울이는 데는 소홀했다. 자기주장만 앞세워 밀어붙이려는 특성은 민주화 이후 등장한 보수·진보 정권을 불문하고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정책 추진도 마찬가지였다.

정책 추진은 보통 ‘정책 아이디어 제기→입법부의 관련 법제 마련→행정부의 정책집행’으로 이어진다. 당연히 그 과정에서 많은 논의가 이뤄지고 이해당사자들의 의견을 청취하는 순서를 거친다. 하지만 개발연대식 정책추진은 논의와 의견 청취가 형식적으로 밀려나고 입법부나 행정부의 일방통행으로 완결된다. 부작용은 당연지사.

대표적인 사례가 ‘정년 60세 연장법’이다. 이전까지 권고사항이던 60세 정년을 의무화했다. 문제는 추진과정이다. 2012년 8월 당시 국회 환경노동위 소속 이목희 홍영표 김성태 정우영 이완영 의원 등이 발의한 법안은 이후 관련 공청회 한 번 열리지 않은 채 2013년 4월 일사천리로 국회 환노위와 본회의를 통과했다. 입법부의 독선과 행정부의 방관이 결합한 결과다.

정년연장을 반대한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그 즈음 나는 ‘정년연장, 지레 안 된다고만 말고’(2012년 8월 8일자)란 칼럼에서 일본 사례를 소개하면서 최소 3∼5년의 시간을 갖고 꼼꼼하게 논의해 부작용을 줄이는데 힘써야 한다고 썼다. 특히 근속연수에 따라 임금이 오르는 연공급(年功給) 체계를 그대로 두고 그저 정년만 연장하는 것은 문제가 크다고 봤다.

일본은 정년을 65세로 연장하는 법안을 2003년부터 논의해 2004년 법을 마련하고 2006년부터 단계적으로 시행되도록 유도하는 한편 내용보완을 계속했으며 2013년 4월부터 최종적으로 도입했다. 10년에 걸친 법제화 과정에도 불구하고 문제점이 노출되고 있는 만큼 졸속으로 마련된 한국의 60세 정년법은 사정이 훨씬 심각할 터다.

실제로 한국의 정년 60세 연장은 2016∼17년 단계적으로 적용됐는데 예상대로 문제점이 쏟아지고 있다. 여야 의원들이 함께 법안을 내놓은 것까지는 좋았지만 부작용과 보완점을 제대로 논의하지 않고 밀어붙이는 바람에 노사 간 시빗거리만 떠안기고 말았다. 그중 하나가 정년이 늘어난 기간엔 임금을 줄인다는 임금피크제다.

일본은 65세 정년이 주로 퇴직 후 재고용 방식으로 운영된다. 하지만 한국의 60세 정년은 재직기간이 연장돼 같은 일을 하는 상황에서 임금피크제가 적용되기에 해당자들의 불만이 커질 뿐이다.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에도 어긋난다. 법적 보완이 없는 한 개별 기업 사정에 따라 땜질식으로 봉합, 운영되는 수밖에 없다. 참담하다.

이런 와중에 지난해 출범한 문재인정부가 ‘사람이 먼저’란 슬로건을 내세우며 부의 유산 극복을 시도했다. 이른바 노동존중사회의 실현이다. 구체적으로 최저임금 인상, 프랜차이즈 노동관행 개선,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근로시간 단축 등의 추진은 부의 유산 극복을 위한 적극적이고 당연한 행보다. 그만큼 기대도 컸다.

그런데 문재인정부조차 정책 추진행태는 개발연대식 몰아붙이기에 머물러 있다. 특히 최저임금 1만원 달성, 주 52시간 노동 관철 등에 대해 마치 고지만 점령하면 된다는 식으로 매달린다. 당위론에 입각한 결론만 강조해 안타깝다. 논의가 부족하다. 의견 청취가 더 필요하다. 아무리 다급해도 바늘허리에 실을 묶어서 쓸 수는 없다.

정책은 그 필요성만큼이나 현실적 적합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분란과 혼란을 떠안긴다. 몰아세우기보다 정책이 제대로 뿌리내릴 수 있도록 치밀하게 보완하려는 지혜가 절실하다. 개혁, 참 쉽지 않다.

대기자 jubi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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