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인터뷰는 2012년 7월 중앙대학교 홍보대사 중앙사랑 인터뷰 '파워중앙인'에서 전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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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국 시인의 시집 『파묻힌 얼굴』이 제 12회 지훈 문학상에 이어 제 7회 이형기 문학상에도 당선되었다. 도시 문명을 날카롭게 묘사하는 특징적인 시를 쓰던 오정국 시인이 이번에는 ‘진흙’이라는 물질에 생명을 불어 넣었다는데... 시인은 미세하고, 보잘 것 없고, 작은 언어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한다. 언어를 매개로 아름다운 선율을 선보이는 연주가, 오정국(문예창작학과 76학번) 동문을 만났다.
 
 
소설가, 기자, 학생, 시인, 교수... 모두 그를 수식하는 단어. 오정국 시인은 대학시절 소설가로 등단했고, 학부 졸업 후 1983년부터 2001년까지 19년 간 기자로 활동했다. 40대 초반에 예술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과정을 밟은 그는, 현재 한서대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문학을 가르치는 교수이다. 대학 시절부터 시에 대한 애착과 열정이 남달랐다는 그. 시인의 길을 걷기로 마음먹은 후, 매 순간을 시와 함께 해왔다는 오정국 시인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Q. 두 차례의 문학상 수상을 축하합니다. 수상작, <파묻힌 얼굴>에 대한 소개를 부탁합니다. 
 

ㅡ 『파묻힌 얼굴』 6년 만에 나온 시집인데, 이렇게 과분한 상을 받게 되어 영광입니다. 목표를 두고 앞만 보고 달린 결과, 문단에서 좋은 평가를 내려준 것 같아요. 이 시집을 편 이유는 존재론적 서정시를 물질적 상상력을 통해 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인데, 그 물질적 도구가 바로 진흙입니다. 물의 유동성, 모래의 파편성 그리고 진흙의 생명성이 시 안에서 주된 이미지로 나타나죠. 저는 삶이라는 추상체를 살아가는 각 존재들 속에는 어느 곳에나 ‘흙’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진흙이라는 소재가 무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는 생각들을 수면 위로 떠오르게 하기 때문에 작품에 사용했어요. 여기서의 흙은 야생의 흙이요, 생명의 흙입니다. 모든 생명에게 흙을 투영시키고자 한 것이죠. 

 

 
Q. 문학의 길에 들어서게 된 과정이 알고 싶어요. 그리고 시의 소재는 주로 어디에서 찾으시나요? 

ㅡ 고등학교 학창시절 저는 그 어떤 것보다 독서를 좋아했습니다. 까뮈, 도스토예프스키 등의 작품들을 읽다가 학교 교실에서는 절대로 배울 수 없는 엄청나고 놀라운 세계가 있다는 걸 깨달았죠. 그리곤 중앙대 문예창작학과에 진학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문학의 세계에 한 발짝 더 다가가고 싶었고, 문학을 체계적으로 배우기 위해서 부모님의 반대까지 무릅썼죠. 저는 대학 입학과 동시에 제 인생을 송두리째 문학의 길에 맡기고 몸을 던졌던 것 같아요. 제 운명을 모두 이 길에 걸었던 거죠. 대학시절 저는 온통 시에 대한 마음으로 가득한 학생이었습니다. 운이 좋게도 수업시간에 과제로 제출하려고 쓴 소설이 수상하면서 소설가로 먼저 등단했지만, 소설에 대한 자의식보다는 시에 대한 열망이 더 컸습니다. 

 

ㅡ 시의 소재는 대부분 일상 속에서의 관찰로부터 비롯됩니다. 다수의 시인들이 그럴 거라고 생각해요. 전에는 도시 문명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서울 지옥의 묵시록'이라고 표현했었습니다. 낚시와 등산을 즐기고 자연 속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도시에서는 깨어나지 않던 감각들이 자연 속에서 비로소 살아나는 걸 느꼈습니다. 그 후로 대자연에서 새로운 나를 발견할 기회가 많았지요. 그래서인지 최근엔 자연 속에서 많은 소재들을 얻는 편입니다. 저는 자연은 인간 삶의 모습을 비춰주는 거울이라고 보는데, 인간의 존재론적 삶의 유한성을 자연을 통해 보여주고 싶습니다. 이번 시집 <파묻힌 얼굴>에서 나타난 '진흙'이라는 소재 역시, 이런 생각을 통해 나오게 된 작품이죠. 

 

 
Q. 기자 생활을 할 당시에 시를 쓰는데 어려움은 없었나요? 
 

ㅡ 기자로 일할 때도 시를 쓰는 것을 포기하진 않았습니다. 쉽진 않았지만, 기자일은 기자일대로 하고 시는 시대로 썼죠. 기자라는 직함 아래 문학을 한다는 이유로 차별과 오해를 받기 싫었기 때문에 가급적 시인이라는 사실을 사회 속에서 숨기기도 했습니다. 그렇기에 더 치열하게 썼던 것도 같아요. 글을 쓰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이 몸담고 있는 환경을 최적으로 만들고 시간을 확보하는 것 또한 중요한데, 밤낮 없는 기자 생활은 시를 쓰기에는 그리 적절한 조건이 아니었습니다. 때문에 시상이 떠오를 때는 다른 동료들의 눈을 피해 컴퓨터 모니터를 끄고 자판만 두드리며 시를 쓰기도 했고, 사무실 직원들이 자리를 비운 점심시간이 되어서야 모니터를 켜서 시를 수정하고 퇴고하며 완성했던 기억이 납니다. 기사를 쓰던 버릇 때문인지, 초기에 썼던 시들은 대체로 건조한 편인데다 암울한 정서도 많이 담겨있습니다. 기자와 시인, 이 두 가지 일을 병행하는 데에는 많은 노력이 필요했지만 오랫동안 기자로 지내며 얻은 것이 참 많습니다.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포착하는데 눈을 떴고, 날마다 달라지는 사건의 양상을 통해서 사람들의 모순된 인간상도 엿볼 수 있었죠. 매일이 싱싱하고 새롭고 역동적인 사건들의 연속이기 때문에 기자라는 직업은 대단히 매력적입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창작을 열망했고, 두 가지를 잡고 버티다가 문화부장이 되면서 다시 학교로 돌아가 배우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Q.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덧붙여, 문학인으로서 그리고 인생 선배로서 학생들에게 한 마디 부탁합니다. 
 
ㅡ 제가 현재 대학 강단에 서는 교수인 만큼, 문예창작학과 학생들과 함께 공부하고 시를 읽을 수 있는 삶을 계속 이어가고 싶습니다. 제겐 아주 보람되고 즐거운 일이죠. 학생들에게 문학의 길잡이가 되어 줄 수 있으면 더욱 좋은 일이고. 시인으로서는 시에 좀 더 매진하며 살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ㅡ 시인을 꿈꾸는 학생들은 늘 현실적인 문제로 망설입니다. 시를 쓰겠다고 결심한 후로도 끊임없이 망설이는 친구들에게 한 마디 해주고 싶네요. 문학의 길, 창작의 길은 미끄러운 밧줄을 잡는 것과 같습니다. 조금만 느슨하게 잡아도 저 밑으로 내려가 버리고 말지요. 창작의 길을 결심했다면 그 밧줄을 끝까지 붙잡고 있어야만 합니다.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고민하는 제자 혹은 후배들,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의지’입니다. 만약 자신의 한계에 부딪혔다면 그것을 계기로 자신을 파악하고 한 발 더 앞서 나갈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누구나 자기가 알고 있는 능력 밖에 한 차원 높은 능력이 존재하며, 그 능력을 가지고 끝까지 두드리는 것만이 창작의 길을 걷는 유일한 방법이라 믿습니다. 
 
ㅡ 저는 단 한 번도 미래의 결과를 예측하며 살지 않았어요. 헌데, 요즘 학생들은 너무 주변을 살피고 비교하면서 매사에 머뭇거리는 것 같아요. 제 아끼는 후배들에게 인생 선배로서 하고 싶은 말은 ‘결과를 예측하지 말고 자기 의지대로 밀고 나가라’입니다. 의지대로 밀어 붙이면 결과는 자연스레 뒤따르기 마련이고, 때로는 실패하는 순간도 오겠지만, 자신의 의지대로 시도했다면 그 어떤 실패도 훗날 그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무식하게 밀어붙이는 끈기와 자기확신이 필요하단 것이죠. 나 자신은 유일무이한 존재이기 때문에, 스스로를 얼마나 신뢰하고 긍정하고 믿느냐가 관건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목표를 가져야하는데, 여기서 알아야 할 것은 목표와 목적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목표는 뚜렷하고 구체적인 타깃이자 ‘표적이 있는 것’을 의미하는 반면, 목적은 대게 추상적인 것입니다. 중요한 건 목적이 아니라 ‘목표’입니다. 100m 달리기에 비유하자면, 목표는 결승점이고 목적은 그냥 뛰는 것입니다. 누구든 결승점이 있어야 달릴 수 있는 것이죠. 그러니 꼭 목표를 가지고, 주위를 살피거나 결과를 예측하는데 시간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단계적 결과와 눈에 보이는 성공에만 집착하다 보면 자신을 잃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겁먹지 말고, 의지로 승부하세요. 인생을 크게 멀리 놓고 보면 완전한 성공도 완전한 실패도 없으니까요.
 
 
인터뷰 내내 오정국 시인의 재치 있는 유머 감각과 입담으로 즐거운 시간이었다. ‘고민 많은 청춘들에게 정답은 따로 없다’는 격려와 함께, 단순하고 무식하게 한 길을 가라며 마음을 다독여주던 오정국 시인. 그의 다음 시집에는 어떤 시어들이 행과 연을 채우게 될까. 앞으로도 시인으로서의 활발한 활동을 기대해본다.
 
 
 
 
 
 
취재 : 홍보대사 정수지(경영학과 4학년)
   홍보대사 김시은(문예창작학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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