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인터뷰는 2018년 6월 5일 중앙대학교 홍보대사 중앙사랑 인터뷰 '파워중앙인'에서 전재하였습니다.]
7월의 어느 날, 수원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훈남 농구선수다운 훤칠한 키와 밝은 얼굴로 우리를 반겨주었다. 대학 시절 ‘얼짱가드’라는 별명으로 코트를 누비던 농구스타에서 이제는 닮고 싶은 선배이자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된 강병현 동문. 훈련과 육아로 누구보다 바쁜 날을 보내고 있지만, 후배들을 위해 기쁜 마음으로 파워중앙인 인터뷰에 응해준 강병현 동문을 만났다.
Part 1. ‘응답하라 2004’ 중앙인 강병현
Q. 동문님 반갑습니다.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중앙대학교 사회체육학과(現 스포츠과학부) 04학번 강병현입니다. 프로농구 10년 차 선수이자 두 아이의 아빠이고, 현재는 창원 LG 세이커스에서 가드로 뛰고 있습니다.
Q. 다른 대학농구 여러 강호를 뒤로하고 중앙대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고등학교 때 중앙대로 연습경기를 왔었는데 중앙대 농구부 분위기가 매우 마음에 들었어요. 선배들이 먹을 것도 챙겨주시고 신발도 선물로 주셔서 너무 감사했고, 선후배들 간에 문화가 너무 좋았어요. 중앙대 농구부는 1학년이 바닥을 닦지 않아요. 2, 3학년들이 바닥을 닦고 1학년들한테는 힘들 일을 가능한 안 시켜서 최대한 빨리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편이에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중앙대에 바로 반해버린 것 같아요. 당시 중앙대 유니폼이 녹색이었는데 그날 이후로 그 유니폼을 입고 있는 형들이 너무 멋있어 보였고 저 녹색 유니폼을 입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Q. 중앙대 선수로 뛰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나 추억은 무엇이었나요?
가장 먼저 기억에 남는 건 대학교 4학년 때 38연승을 거둔 경기가 기억에 남아요. 그때는 이기는 경기가 많으니까 회식도 자주 하고 놀러 다니기도 했던 것 같아요. 미디어에 제 이름이 자주 나오기도 하고 그때는 정말 기뻤어요. 그 이후로도 후배들이 너무 잘해줘서 52연승까지 했죠. 52연승이면 거의 2년 동안을 지는 경기 없이 계속 이긴 거잖아요. 지는 법을 몰랐던 시기니까 선수로서 정말 좋은 시기를 보낸 거죠.
또 하나는 당시에 운동이 너무 힘들었던 기억이 나요. 그래서 한번은 운동이 너무 힘들어서 농구를 관두겠다는 생각으로 도망가려는 계획까지 세운 적도 있었어요.(웃음) 원래 계획은 점심시간에 나가는 거였는데 식사가 끝나고 바로 나가면 걸릴까 봐 잠깐 자다가 나간다는 게 완전히 잠들어버린 거에요. 그래서 또 끌려가듯이 체육관에 가서 운동을 했죠. 그 날 이후로 ‘에라, 모르겠다 그냥 버텨보자’는 생각으로 열심히 훈련을 했어요. 그렇게 힘든 시기를 넘기고 나니까 제가 도망가려고 했다는 게 부끄러워지더라고요.
Q. 학창 시절 동문님의 캠퍼스라이프가 궁금합니다. 당시 여학우들에게도 인기가 많으셨을 것 같은데요. 이와 관련된 재밌는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Part 2.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듬직한 선배, 강병현 선수
Q. 대학농구의 최강자 자리에서 프로로 데뷔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대학 시절과 프로에 데뷔하셨을 때의 가장 큰 차이가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일단 학교를 다닐 때는 제가 잘했다기보다 좋은 선수들이 많았었어요. 오세근, 김선형, 윤호영, 함지훈 정말 좋은 선수들만 있어서 그 선수들과 함께 경기했으니까 사실 이기는 것에만 익숙해 있었죠. 근데 처음 프로에 가서는 제가 지금까지 했던 농구랑은 또 다른 세계가 있다고 느꼈어요. 일단 처음 보는 외국인 선수들도 신기했고 어느 누구도 쉬운 슛 하나하나를 놓치는 사람이 없어요. 전술도 다르고, 속도도 다르고, 몸싸움도 다르게 느껴져서 지금까지 산전수전 다 겪은 선배들 사이에 제가 너무 초라해지는 거에요. 당연히 될 거라는 자신감 하나로 프로 생활을 시작했는데 첫 출발은 그렇게 좋지 않았어요. 전자랜드로 처음 프로에 입단했을 때 진짜 프로의 벽이 높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었죠. 그리고 아무래도 미디어에 많이 노출되다 보니까 관심을 많이 받았다가도 금방 훅 떨어지는 것도 느끼고 그런 차이가 크게 있었던 것 같아요.
Q. 국가대표로도 선발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국가대표로서 선수생활을 한다는 것이 어떤 느낌일지 실감이 나지 않는데, 소감을 듣고 싶습니다.
농구를 처음 시작할 때부터 농구선수로서 국가대표가 되는 것이 꿈이었는데, 태극마크를 달기 전까지는 어떤 느낌일지 상상이 안 됐어요. 근데 실제로 대표팀에 선발되고 국제무대에 나가서 애국가를 듣는데 엄청 짜릿하더라고요. 그때 좀 뭔가 ‘내가 나라를 대표해서 나온 사람이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죠. 사실 한국에서 선수생활 하면서도 경기 전에 애국가를 듣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렇게 감동적으로 들린 적은 없었거든요. 근데 확실히 해외에서 듣는 애국가는 소름 돋기도 하고 정신도 다시 한 번 가다듬게 돼요. ‘내가 국가대표구나.’ ‘국가대표가 된다는 게 이런 느낌이구나.’ 뭐 이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아무래도 국가대항전이다 보니까 다른 경기보다도 마음가짐이 달라지고, 어떻게 해서든 이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겨야 할 팀은 꼭 이겨야죠.
Q. 운동을 하다 보면 운동에 대한 회의감이 드는 순간이 있습니다. 불확실한 미래에 회의감을 느끼고 있는 후배들에게 불안감을 극복할 수 있는 조언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저도 이런 고민이 많았었고, 현재도 진행 중이라 힘든 질문이에요. 사실 저는 현재까지 제가 선수로서 목표했던 것들을 절반 정도는 이룬 것 같아요. 저는 프로에서 농구선수로 뛰는 것이 목표였고, 국가대표가 되는 것이 목표였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제 목표를 이룬 상태인 거죠. 그런데도 그 이상으로 이룬 것이 별로 없다는 생각 때문에 자괴감이 들 때가 많아요. 저도 그 기분을 잘 아니까 이 질문을 해준 후배들이 많이 안타깝긴 한데 현실적으로 생각했을 때 누구든지 전부 다 잘할 수는 없다고 봐요. 다 잘하는 사람이 된다면 정말 좋겠죠. 선수로서 시합도 많이 뛰고 싶고 활약도 하고 싶은데 그렇게 잘 안되면 이런 생각이 들 거에요. 또 프로에서는 결국 생계랑도 연결이 되는 거고 시합을 많이 뛰어야 돈도 많이 벌 수 있는 건데 운동만 열심히 하고 결과가 좋지 않으면 그런 생각이 들죠. 이런 고민에 현실적인 조언을 해준다는 게 참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저도 지금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으니까요.
그런데도 만약 선배로서 제가 굳이 조언을 하자면 좋은 생각을 많이 했으면 좋겠어요. 저 같은 경우엔 가족들이 도움이 많이 되는 편이죠. 항상 아내와 아들들을 보면서 힘을 얻는 것 같아요. 저도 학생 때 저런 고민을 많이 했었는데 그때도 결국은 가족들이 많이 힘이 됐어요. 스스로에게 동기부여가 되고 응원을 해주는 사람들에게 힘을 많이 얻어갔으면 좋겠네요. 그리고 무엇보다 땀은 배신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으로 불안감을 조금이나마 덜었으면 좋겠습니다.
Q. 체육 대학 학우들이 스포츠 에이전트 스포츠 트레이너 등으로 진로를 준비하기도 하는데 실제로 현장에서 선수들에게 도움이 되는지 궁금합니다.
이 질문은 체육대학 학생들에게 정말 도움이 될 만한 질문인 것 같아요. 사실 농구에서는 에이전트 시장이 작은 편이에요. 근데 다들 아시겠지만, 축구나 야구의 경우에는 에이전트 활동이 활발한 편이라서 에이전트를 준비하고 있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축구는 우리나라 선수들이 해외 클럽과 계약하는 경우가 많기도 하고 야구도 국내에 많은 에이전트들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리고 스포츠 시장과 선수들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직종이기 때문에 만약 에이전트를 생각하고 있다면 충분히 유망한 직종이라고 생각합니다. 트레이너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트레이너들은 선수들의 몸을 관리해주기 때문에 굉장히 필요한 직업이라고 생각하고, 결과적으로 선수들이 좋은 몸 상태로 경기에 뛸 수 있게 중요한 역할을 해주고 있어요. 만약에 체육대학 후배들이 그쪽 진로를 생각하고 있다면 많이 응원해주고 싶습니다.
Q. 올해 10월, 프로농구 새 시즌 개막을 앞두고 있습니다. 프로농구를 잘 모르는 학우들을 위해 리그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함께 이번 시즌 각오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우선 프로농구는 정말 빠른 스포츠라는 점이 매력적인 것 같아요. 코트 안에서 전개가 빨리빨리 이루어지니까 볼거리가 굉장히 많은 스포츠이고 만약에 경기장에 직접 와서 보신다면 더 재미있으실 겁니다. 그리고 아무래도 겨울에 하는 실내스포츠다 보니 따뜻한 체육관에서 연인끼리 데이트코스로도 좋을 것 같네요. 경기장에 많이 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Part 3. 농구선수 강병현, 가족과 함께 빛나다.
Q. 강병현 선수의 가족을 보면서 화목한 모습에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강병현 선수에게 가족이란?
일단 저희 가족을 너무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족은 지금 저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죠. 제가 어릴 때부터 항상 꿈이 화목한 가정을 꾸리는 게 목표였어요. 내가 자녀가 생기면 친구 같은 아빠가 되고 싶고. 아내에게도 가정적인 남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서 그런지 가정에 더 많이 신경을 쓰게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아내랑 제가 나이가 같아서 더 친구 같은 분위기가 생기기도 해요. 지금처럼 계속 친구 같은 아빠, 남편이 되고 싶어요.
Q. 강병현 선수 부부는 스타 농구선수와 미스코리아의 만남으로도 유명한데요. 두 분의 러브스토리가 궁금합니다.
때는 2008년 6월, 소개팅을 하기로 했었어요. 소개팅 제의를 받고서 처음에는 미스코리아라고 하길래 굉장히 깍쟁이스러운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사진도 확인할 겸 당시 유행했던 싸이월드 미니홈피를 들어가 봤어요. 근데 사진을 보자마자 생각이 바뀐 거죠. ‘얘는 아닐 거다.’ ‘얘는 마음도 착할 거야.’라는 생각밖에 안 들었어요. 사진을 봤는데 너무 예쁜 거에요. 만났을 때도 너무 예쁘더라고요. 바로 첫눈에 반했어요. 그리고 3일 동안 제가 할 수 있는 대로 최선을 다해서 소개팅한 지 3일만 연인이 됐습니다. 사실 그 당시에 아내는 미스코리아 선에 당선되면서 자기 커리어에 정점에 있었고, 저도 2008년이니까 중앙대 38연승의 주역이라고 기사도 많이 나갈 때라 서로 자신감이 있었던 것 같아요.
Q. 농구선수, 한 가정의 남편 그리고 두 아이의 아버지로서 모든 역할을 충실히 해내시는 모습이 너무나도 멋집니다. 두 아들의 아버지로서 가장 보람된 순간은 언제였나요?
아이들이 아직 어리긴 한데 아이들이 뭔가 사람답게 커가는 모습을 보면 뿌듯함을 느껴요. 인사도 바르게 하고, 아닌걸 아닌 거라고 말해줬을 때 고쳐지는 모습이 보이면 아이들이 내 말을 알아듣는구나 하고 보람을 느끼죠. 특히 둘째 같은 경우에는 제가 어릴 때랑 너무 비슷해서 아내가 그냥 강병현이라고 부르거든요.(웃음) 둘째를 보고 있으면 그냥 제 아들인 게 바로 티가 나니까 귀엽기도 하고 가끔은 그냥 바라만 보고 있어도 뿌듯한 것 같아요.
Q. 농구선수 아버지로서 만약 아들들이 농구를 한다고 하면 지지해 주실 의향이 있으신가요?
사실 마음으로는 아이들이 무언가를 원한다고 하면 되도록 시켜주고 싶어요. 그게 농구든 축구든 야구든 상관은 없지만 솔직한 마음으론 굳이 농구를 권하지는 않을 것 같아요. 웬만하면 자기가 좋아하는 다른 일을 했으면 좋겠죠. 제가 직접 느껴봤고, 힘든 걸 아니까. 물론 안 힘든 직업은 없겠지만. 만약 아들이 그래도 농구를 하겠다고 한다면 진짜 현실적으로 강하게 이야기를 해줘야 할 것 같아요. 선수를 준비하다가 너무 힘들어서 도망가고 싶을 수도 있고, 기합을 받을 수도 있다. 정말 힘들 거다. 그리고 프로를 간다는 보장도 없으니까 프로에 가지 못하면 어떤 진로를 생각할 것인지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봐야죠. 솔직히 돈을 엄청나게 많이 벌 수 있는 직업도 아니니까 현실적으로 이야기를 해줘야 될 것 같아요. 근데 뭐 굳이 본인이 하겠다고 하면 어쩔 수 없이 시켜야겠죠?(웃음)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게 우선이니까요.
Part 4. 인터뷰를 마치며
Q. 강병현 선수님은 선수로서뿐만 아니라 따뜻한 선배로서 많은 후배들이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고된 훈련으로 더운 여름을 지내고 있을 후배들에게 격려와 응원의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일단 선수로서, 선배로서 저를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마 요즘 정말 힘들게 운동하고 있을 텐데 열심히 흘린 땀은 결코 배신하지 않을 거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물론 운동을 열심히 하고 준비를 많이 하더라도 선수로서 잘 안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지금까지 운동하면서 키운 인내심, 체력, 정신력, 집중력 이런 것들을 통해서 어느 집단에서도 충분히 자기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결국은 선수 생활을 통해서 고통과 인내와 배려 이런 걸 다 배웠을 거에요. 어디에서 어떤 일을 하던 결국은 똑같은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거기 때문에 불안감이나 회의감은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체육대학 선수들이 흘린 땀은 절대 배신하지 않을 것이고, 어디에 가든 쓸모가 있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후배들이 저를 조금 더 편하게 대해주었으면 좋겠어요. 프로생활을 하다 보면 외국인 선수들을 보는 경우가 많은데 외국인 선수들은 상대적으로 선후배 문화가 없어요. 나이가 많든 적든 누구라도 친구가 될 수 있는 문화여서 그게 조금 부럽다고 생각할 때가 많죠. 물론 최소한의 예의는 필요하겠지만, 그냥 저를 친구처럼 대해주었으면 좋겠고 조금 더 터놓고 여러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요. 후배라고 무조건 ‘예 알겠습니다.’라고 할 필요도 없고 선배라고 ‘무조건 맞는 거다.’라고 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니까 더 편한 사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려면 제가 후배들에게 더 다가가야겠죠. 비시즌에 안성이나 서울 경기가 있으면 자주 찾아갈 테니까 그때마다 조금 더 반겨주셨으면 좋겠네요.
Q. 동문님이 그리고 있는 동문님의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선수 생활이 마무리되면 어떤 일을 계획하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사실 저도 이제 선수로서 남아있는 기간이 길면 4년, 5년 정도라고 보는데 선수생활을 마치고 무엇을 해야 할 지 고민이 많았어요. 일단은 제일 원하는 건 지도자를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그게 프로팀이라면 가장 좋겠지만, 자리가 안 나면 모교에 가서 농구도 더 배우고 후배들에게 제가 알고 있는 농구를 알려주고 싶어서 첫 번째는 지도자로 가는 목표입니다. 만약에 자리나 여건이 안돼서 지도자가 안 된다면 농구 경기를 해설하는 농구 해설자도 생각해보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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