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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핵화는 타결 불가’란 선험적 전제에서 나온 전망이 합리적 의심을 가장한 채 세간 떠돌아
文정부, ‘외곬외교’에서 벗어나 급변 상황에 걸맞게 미·중·일 등과의 외교에 적극 임하라


기해년 설날 연휴 끝자락에 반가운 뉴스가 날아들었다. 6일 오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새해 국정연설에서 이달 27~28일 베트남에서 2차 북·미 정상회담을 갖는다고 밝혔다. 지난해 6·12 싱가포르 정상회담 이후 좀 더 구체적이고 진일보된 비핵화 관련 성과가 절실하던 터에 들려온 소식이었다.

이어 9일 아침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회담 개최지가 하노이라고 썼다. 그는 실무협의 차 6~8일 북한을 방문한 스티브 비건 미 대북특별대표가 생산적인 대화를 나누고 돌아왔다고 소개했다. 회담장소가 북한이 원했던 곳으로 결정됐고 양국 간 실무협의가 2박3일이나 이어졌다는 점 등은 긍정적인 조짐이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은 시기가 불확실했을 뿐 예견된 일이었다. 싱가포르 정상회담 이후 후속 협상이 성과를 못 내고 지지부진 시간만 끌어왔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미국 내 비판을 따돌리는 카드가 시급했고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언제까지 실무협상에 맡겨둔 채 기다리고만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다만 2차 회담의 성과와 관련해서는 부정적인 전망이 적지 않다. 독재 체제인 북한에서야 비판의 목소리가 나올 리 없지만 한국과 미국에서는 한반도의 미래와 관련해 심각한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그중 가장 큰 걱정은 불신이다. ‘과연 북한이 핵을 폐기할 수 있을까?’

우려는 꼬리를 문다. ‘트럼프가 외교적 성과를 내는 데에 눈이 멀어 핵 동결과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폐기를 대가로 제재를 풀어준다면 사실상 북한의 핵 보유를 용인하는 꼴인데….’ ‘핵과 중단거리 미사일로 무장한 북한과 교류해야 하는 한국의 처지라니….’ ‘최종적이고 충분히 검증된 비핵화(FFVD)는 폐기되나?’ ‘주한미군 철수 가능성은?’

모두가 합리적 의심이다. 30여년을 끌어온 북핵문제를 돌아볼 때 이미 우리 안에 적잖은 실패의 기억들이 쌓여 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드러난 북한의 집요함, 정권 교체와 더불어 일관성을 잃는 미국의 북핵문제 대응, 최근 중국의 부상과 트럼프 대통령의 돌출행동 등을 감안하면 충분히 예상 가능한 의심이다.

불신이 똬리를 틀고 있어 의심을 걷어내기가 쉽지 않다. 다만 여러 의심 중 정말 우려되는 것은 ‘비핵화는 타결 불가일 것’이라는 선험적 전제에서 나온 전망이 합리적 의심을 가장한 채 세간을 떠돌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아마도 미국에선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반발이, 한국에선 북한만 바라보는 문재인정부의 ‘외곬외교’에 대한 비판 탓이 크다.

합리적 의심은 필요하나 좀 더 복합적인 시각이 필요하다. 특히 최근 미국의 대중국 전략이 크게 바뀌고 있다. 이 문제를 거론하기에 앞서, 지난해 미·중 무역전쟁이 시작될 무렵 쓴 내 칼럼 ‘팍스 아메리카나의 몰락 빨라지나’(2018년 7월 16일자)의 견해부터 일부 수정해야 하겠다.

칼럼의 요지는 두 가지였다. 첫째, 미·중 관세인상 경쟁에서 중국은 절대적으로 패할 것이다. 둘째, 수세에 몰린 중국의 요청으로 미·중 무역역조가 시정되는 선에서 종결되면 미국과 세계는 더 큰 어려움에 빠질 것이다. 중국의 최대 관심은 차세대 첨단기술 확보에 있기 때문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지식재산권 침해, 첨단기술 탈취 등에 힘써온 중국의 책략을 차단하지 못하면 무역전쟁의 최종 승자는 결국 중국이 될 것이다.

하지만 미국의 대응은 무역역조 시정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 화웨이 등 대표적인 중국의 5G 통신장비회사에 대한 압박이 단적인 예다. 내 칼럼에서 놓친 부분이 바로 이것이었다. 트럼프 정부 이전만 해도 미국의 주류는 ‘중국의 평화적인 부상이 세계와 미국 모두에 유익하다’는 식으로 헛짚고 있었다(피터 나바로·그렉 오트리, ‘중국이 세상을 지배하는 그날’).

나바로 미 국가무역위원회(NTC) 위원장은 일찍이 중국의 전략을 갈파하고 트럼프 대통령의 미·중 무역전쟁을 주도하고 있는 인물이다. 미국의 대중 압박은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1972년 미·중 국교정상화 이후 처음 벌어졌다. 기묘하게도 이는 싱가포르 정상회담 이전까지 적대적이었던 북·미 관계의 극적인 변화 흐름과 정반대다.

합리적 의심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미래를 예단해선 안 된다. 특히 미국의 대중 압박이 강고한 흐름이라면 중국 포위망 차원에서 주한미군 철수는 불필요한 의심이다. 더구나 북한은 과거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중국이 주도했던 6자 회담을 실패한 것으로 규정하고 미국과 직접 거래를 도모하고 있지 않은가.

새롭게 펼쳐지는 한반도의 극적인 변화를 직시하자. 역사는 때로 합리를 넘어 초월적으로 펼쳐진다. 물론 한국이 제외된 비핵화 협상은 경계해야 한다. 우선 문 정부는 ‘외곬외교’에서 벗어나 급변 상황에 맞게 미·중·일 등과의 외교에 적극 임하라. 올해가 한반도에서 불신이 사라지는 원년으로 자리매김되기를 바란다.

조용래 대기자 jubi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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