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대홈페이지 '중앙인문학관' 임하연의 글방 <숲새네 노란벤치>의 작품들을 다시 정리하여 올립니다.

 

 

쥐들아, 기억하니?

    

 

        임 하 연

 

 

 

차가운 빗줄기가 온종일 나의 창을 때리며 내리던 날, 어머니의 전화를 받았다. 객지에 있는 딸의 안부를 이것저것 물으시고는 돌아가신 아버지 얘기로 돌리신다.

얘야, 너도 아버지가 늘 생각나니? 나는 요즘 네 아버지가 너무 보고 싶다. 눈도 보고 싶고, 우뚝한 코도 보고 싶고, 훤칠한 이마도 너무나 보고 싶다. 자상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도 실컷 다시 들었으면 좋겠구나.”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몇 개월이 지났건만, 어머니는 늘 이렇게 목이 메어 전화를 끝내곤 하시는 터다.

 

빗물이 흘러내리는 창밖으로 눈을 둔 채, 아버지 생각에 젖어있던 나는 어디선가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상념에서 깨어나, 쥐에 대한 아버지의 일화 한 가지가 떠올랐다.

어느 날, 아버지는 마당 하수구 구멍으로 쥐가 들락거리는 것을 알고 쥐약을 놓자는 식구들의 말에 고개를 저으시며 철사를 챙겨 한동안 무엇인가 골똘히 만들기 시작하셔서 우리는 모두 궁금증이 일었었다.

 

아버지가 만드신 것은 세상에서 처음 보는 야릇한 하수구 마개였다.

밑에서 올라오려는 쥐가 이마를 부딪쳐 알밤을 맞도록 아래쪽으로 철사를 꼬부려서 볼록볼록하게 세워 감친 쥐 방어용 아이디어 마개를 하수구에 끼워 덮으시는 천진스런 모습을 보고 우리는 얼굴을 마주보며 한바탕 웃었었다.

 

그때 우리는 웃음 속에 훈훈하게 번지는 이상한 행복감을 느꼈었다고 기억된다. 비록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쥐지만, 함부로 목숨을 빼앗기보다는 저희끼리는 자유롭고 편안하게 살아나가는 길을 찾아 주면서도 서로 피해를 입지 않는 공존의 슬기를 택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은 우리 가슴에 작지만 따뜻한 씨앗을 심어 움트게 한, 한 장면으로 오래도록 가슴에 남아있다.

 

쥐들이 이 하수구 마개 틈으로 아버지 모습을 보았다면 무엇을 느꼈을까?

아버지 모습을 떠올릴 때나, 쥐를 대하게 될 때면 주름진 아버지가 그 장면 속에서 소년처럼 맑고 투명하게 다가선다.

 

쥐들아, 너희도 기억하니? 따스했던 우리 아버지의 마음을.   

 

 

쥐1-포.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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