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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B산악회 6월 행사 안내

최재영 | 조회 수 250 | 2013.05.31. 11:46

  OB산악회에서는 6월 행사로 경기도 여주의 남한강 나루터 길인 여강(驪江)길을 다음과 같이 다녀오기로 했습니다.

  중앙대학교 동문이나 그 가족은 누구라도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참석을 원하시는 동문이나 가족은 010ㅡ9253ㅡ2296(김요찬, 경영학과 25회)으로 연락주시면 편안하게 모시겠습니다.

출발일시 : 2013년 6월 16일(일) 08:00 *우천불구

출발장소 : 용산 역전광장(버스 대기)

준 비 물 : 간편한 장비와 중식

회     비 : 20,000원 

  여강(驪江)길 : 강원도 태백시 대덕산에서 발원해 충주~여주~양평~서울로 흘러가는 강이 남한강이다. 그런데 여주 사람들은 이를 여강(驪江)이라고 부른다. 특별한 의미는 없고 그냥 여주에 있어서다.
  그 옛날,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여강 양옆으로 마을이 생겼고, 이를 이어주기 위해 나루터가 만들어졌다. 이 마을과 마을, 나루와 나루를 잇던 옛길들을 연결해서 만든 것이 여강길이다. 여강길에는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강변 사찰 신륵사가 있고, 세도가들이 풍류를 즐겼던 부라우 바위도 있다. 수달이 살고, 멸종위기 야생식물 2급종인 층층둥글레와 단양쑥부쟁이가 산다. 
  사람과 자연의 이야기가 남한강 물길만큼 풍성하다. 2009년 문화체육관광부가 여강길을 스토리가 있는 문화생태탐방로로 지정한 이유다.

  신륵사(神勒寺) : 여주읍 천송리 봉미산(鳳尾山)에 있는 사찰. 신라 진평왕(眞平王) 때 원효(元曉)가 창건하였다고 하나 확실한 근거는 없다. 고려 말인 1376년(우왕 2) 나옹(懶翁) 혜근(惠勤)이 머물렀던 곳으로 유명한데, 200여 칸에 달하는 대찰이었다고 하며, 1472년(조선 성종 3)에는 영릉 원찰(英陵願刹)로 삼아 보은사(報恩寺)라고 불렀다.
  신륵사로 부르게 된 유래는 몇 가지 설이 전해지고 있다. 그 하나는 “미륵(혜근을 가리킴)이, 또는 혜근이 신기한 굴레로 용마(龍馬)를 막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고려 고종 때 건너마을에서 용마가 나타나, 걷잡을 수 없이 사나우므로 사람들이 붙잡을 수가 없었는데, 이 때 인당대사(印塘大師)가 나서서 고삐를 잡자 말이 순해졌으므로, 신력(神力)으로 말을 제압하였다 하여 절 이름을 신륵사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고려 때부터 벽절[甓寺]이라 불려지기도 하였는데, 이는 경내의 동대(東臺) 위에 있는 다층전탑(多層塼塔)을 벽돌로 쌓은 데서 유래한 것이다.
  이 절의 중요문화재로는 보물 제180호인 조사당(祖師堂), 보물 제225호인 다층석탑, 보물 제226호인 다층전탑, 보물 제228호인 보제존자석종(普濟尊者石鐘), 보물 제229호인 보제존자 석종비(普濟尊者石鐘碑), 보물 제230호인 대장각기비(大藏閣記碑), 보물 제231호인 석등이 있으며, 유형문화재로는 극낙보전(極樂寶殿) 과 그 이외의 부속건물로 구룡루(九龍樓) ·명부전(冥府殿)·시왕전(十王殿)·산신당·육각정 등이 있다.

  부라우 바위 : 부라우는 ‘붉다’의 우리말인데 주변에 붉은 너럭 바위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붉은 바위에는 단암이라는 글자가 큼지막하게 새겨져 있다. 호가 단암(丹巖)인 인현왕후(조선 19대 숙종의 계비)의 오빠 민진원(1664~1736)이 새긴 것이다. 인근의 여흥 민씨 집성촌에 살던 단암은 자주 이 바위를 찾았다고 한다. 여름에는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면서 풍류를 즐기기에 더 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다.

  *시간이 있으면 강천보 한강문화관과 명성황후 생가도 답사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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