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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B山岳會 送年 山行 案內

최재영 | 조회 수 561 | 2011.12.07. 08:24

  OB산악회에서는 송년회를 겸한 12월 산행을 경기도 포천시 창수면에 있는 보장산(555m)으로 정하고 다음과 같이 다녀오기로 했습니다.

  중앙대학교 동문이나 그 가족은 누구라도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참석을 원하시는 동문이나 가족은 010ㅡ8730ㅡ9063(김건일, 행정학과 18회)으로 연락주시면 편안하게 모시겠습니다.

  출발일시 :  2011년 12월 18일(일)  08:00    *우천불구

  출발장소 :  용산 역전광장(하나투어 버스 대기)

  준 비 물  :  겨울 산행에 필요한 장비와 중식

  회     비  :  20,000원   *(부부동반 30,000원)

  보장산(寶藏山, 555m) : 경기도 포천시 창수면 신흥리와 운산리 및 오가리에 위치한 산으로 한탄강을 사이에 두고 종자산과 마주보고 있으며 오가리 북쪽을 병풍처럼 가로막고 있다. 동쪽을 제외한 3면이 한탄강과 영평천으로 둘러싸여 있다. 특히 남쪽 기슭의 창옥병(蒼玉屛)은 푸른 물 위에 펼쳐진 아름다운 기암이 병풍처럼 늘어서 있어서 옛날부터 시인 묵객들이 시류를 즐기던 곳이라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보장산(寶藏山)은 영평현 서쪽 10리 지점에 있다."고 되어 있고, 『여지도서』에는 "보장산은 영평현(永平縣)의 서쪽 15리에 위치하며 불곡산에서 뻗어 나온 산줄기이다."고 되어 있다.

  옛 영평군 당시 읍 뒤 주산 불곡산(현 불무산을 말하는 듯)의 내맥으로 많은 전설과 영평팔경 중의 하나인 기승 창옥병을 지니고 있는 명산이다. 백운산에서부터 서류하는 영평천이 보장산 남쪽 기슭을 흐르고 있으며, 그 언덕에 창옥병이 자리 잡고 있어 산자수명한 승경 찾아 옛 문인과 묵객들의 내왕이 잦았다는 흔적 또한, 남아 있다.

  이 산이 위치한 지역을 오가리(伍佳里)라 하는데 다섯 가지 가경이 있다 하여 이름 지었다 할 만큼 아름다운 산이다. 『구한말지도』에는 보장산(寶章山)으로 표기되어 있다. 한편, 창수면 고소성리와 오가리 경계에는 작은 보장산(353m)이라 불리는 고소성(姑蘇城)이란 옛 석성이 있는데 그 둘레가 2㎞이다. 보장산의 남서쪽 줄기가 된다.

  오가리(伍佳里) : 마을 아래쪽으로 영평천이 북쪽으로는 보장산이 위치해 있는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취락이다. 다섯 갈래 길이 있었다는 것에서 지명이 유래하였다고 하며, 또 금수정, 창옥병, 아름다운 강, 산, 마음씨 좋은 사람 등 다섯 가지의 아름다움이 있다고 하여 오가리라고 불린다고도 한다. 마을 절벽 위 평평한 대지에 금수정(金水亭)이 세워져 있는데, 옛부터 시인 묵객들이 시류를 즐기던 정자이다. 문화재로는 320평 규모의 안동 김씨 가문의 종택이 있다.

  창옥병(蒼玉屛) : 포천시 창수면 주원리 영평천변에 있는 벼랑이다. 영평8경 중 3경이다. 창옥병이란 이름이 말하듯이 기암괴석으로 된 병풍이다. 『해동지도』에 "창옥병(蒼玉屛)은 영평천(永平川)가의 벼랑으로 푸른 바위가 옥병풍처럼 벌여 있어 생긴 이름이며 영평팔경의 하나이다."고 기록되어 있다. 『대동지지』에 "창옥병은 영평현 서쪽 10리에 있다."고 되어 있다. 창옥병의 폭이 수마정이요 높이가 40~50자에서 백수십자로 깎은 듯한 절벽으로 절벽에는 굴곡이 있고 고저가 있고 암혈이 있는가 하면 갖가지 형태의 동물 모양이 되어 돌출한 바위도 있다. 1931년에 이 암벽을 깎아서 터널을 뚫어 도로를 만들어 통행하였으나 최근에 우회도로가 생겨 현재는 일부 차량만 통행하고 있다. 맞은 편에 옥병서원(창수면 주원리)이 있었는데 1658년(효종 9)에 창건하였다. 『여지도』에는 "창옥병에 박사암서원(朴思菴書院)이 있다."고 표기되어 있다. 『팔도군현지도』에는 옥병(玉屛)으로 표시되어 있다.

  금수정(金水亭) : 1986년 4월 포천시 향토유적 제17호로 지정되었다. 오가리 마을 앞을 흐르는 영평천(永平川) 변 절벽 위에 있는 작은 규모의 정자이다. 원래는 조선시대 중기 현재의 장소에 김명리라는 사람이 우두정(牛頭亭)이라는 정자를 지었는데, 얼마 후 이 정자를 조선시대에 시인이자 서예가로 널리 이름을 떨친 양사언(楊士彦)에게 주었고 양사언은 정자 이름을 현재의 금수정으로 고쳤다고 한다.

  이후 안동 김씨(安東金氏) 문중에서 소유하며 몇 차례 중수를 거쳐 유지되다가 6·25전쟁 때 완전히 소실되었다. 1980년대에 포천시의 지원으로 같은 장소에 현재의 정자를 복원했다. 정자 현판의 글씨는 양사언이 직접 쓴 것이다.


 
 
  안동 김씨 문온공 종가

 
  금수정

 
  금수정 현판 (양사헌의 글씨임)

 
  창옥병

 
  창옥병 터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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