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부는 통일과 한반도 평화쟁취의 꿈을 꾸고나 있나, 그 방안을 모색하고는 있나”

입력 2016-08-15

여기저기서 위기론이 쏟아진다. 경제가 활력을 잃었고, 남북관계는 뒷걸음질치고 있는 데다 한·미·일 대 북·중·러의 대립구도가 두드러지고 있어서다. 19세기 말 주변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나라를 빼앗겼던 그 당시의 대외 상황과 비슷하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이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궁금증이 인다. 1897년 조선이 대한제국으로 국호를 바꿨을 때 백성들은 새 나라로 변신한다고 보았을까. 실질적인 국권 상실을 뜻하는 1905년 을사늑약에 협력했던 을사오적신(乙巳五賊臣)은 어떤 미래를 예상했을까. 1910년 경술국치 직전에 나라가 망한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과연 얼마나 되었을까.

망국의 울분을 가눌 길 없어 죽음을 택하거나 해외망명을 꾀해 나중을 도모하려 했던 이들도 적지 않았다. 그런데 당시 대부분의 상층 엘리트, 특히 대한제국의 관료들은 혹 사태를 제대로 읽지도 못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그저 가문과 자신들의 안위를 먼저 챙겼던 것은 아닌지 그런 생각이 든다.

바로 지도자들의 도덕불감증 문제다. 요즘도 정치권을 비롯해 법조계 관계 재계 학계에 이르기까지 종종 드러나는 부끄러운 모습이다. 하물며 망국의 상황에서는 그런 이들이 훨씬 더 기승을 부렸을 터다. 더구나 그간 우리의 역사 기술이 선현들의 치부를 될 수 있는 한 건드리지 않았음을 감안하면 그 의심은 더욱 지울 길이 없다.

역사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특히 나쁜 역사의 경우는. 아일랜드 출신의 4인조 록밴드 크랜베리스(The Cranberries)가 94년에 내놓은 곡 ‘좀비’ 2절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어머니들의 찢겨진 마음이 계속 이어져/ 폭력이 침묵을 낳으면서 말이야/ 우린 분명 뭔가 잘못된 거야/ 1916년부터 계속 똑같은 주제가 계속되고 있어.”

크랜베리스는 발표곡 ‘내 가족에 대한 시(Ode to my family)’의 첫 대목이 몇 해 전 개그콘서트의 ‘두근두근’ 코너에서 ‘썸 타는’ 남녀의 배경음악으로 쓰여 국내에서도 은근히 잘 알려진 그룹이다. ‘좀비’는 여성 보컬 돌로레스 오리오던의 독특한 창법 덕분에 유명하고 특히 1916년은 그해 부활절에 벌어진 아일랜드 독립무장봉기를 가리키고 있어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좀비’의 가사 역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데 핵심은 반전(反戰)이다. 독립을 쟁취하는 과정에서 죽임이 벌어지고 있는 데도 나와 내 가족의 문제가 아니라고 모른 체하는 사람들을 비난하기도 하고, 폭력에 침묵하는 행태가 아무런 생각이 없는 ‘좀비’들과 다를 바 없다는 은유를 담고 있다. 그럼에도 그 폭력 상황은 지금도 여전해서 자식 잃은 엄마들의 가슴이 계속 무너져 내리고 있다고 노래한다.

참담한 역사는 눈물로 복기하고 거듭 마음에 새겨 구체적인 실천으로 이어가지 않으면 반복적인 위기론만 입버릇처럼 되뇔 뿐 원하는 미래로 나아가기 어렵다. 게다가 나와 내 가족의 일이 아니라며 꼬리를 빼는 이들마저 도처에 적지 않으니 말이다.

이 대목에서 또 궁금증이 난다. 100년 전 선현들은 과연 광복을 내다봤을까. 1916년부터 내내 같은 주제가 이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시 의문이 앞선다. 게다가 45년 광복과 더불어 벌어진 남북분단이 이토록 질기게 이어질 줄 알았던가.

위기론에만 휩쓸려 땜질식 걱정만 해온 탓이 크다. 돌아가신 이영희 선생은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고 했는데 날개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머리 달린 몸통, 즉 미래를 향한 꿈이다. 현 정부는 진정으로 남북통일과 한반도 평화 쟁취의 꿈을 꾸고나 있나, 그 방안을 모색하고 있기는 하나. 후손들이 2016년 선현들은 뭘 생각하고 있었느냐고 물어오면 뭐라고 답할 참인가. 71번째 광복절 아침이 무겁게 다가온다.

국민일보 조용래(경제78)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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