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인터뷰는 2017년 2월 13일 중대신문 특별인터뷰에서 전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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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되는 취업난으로 인해 학생들은 졸업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다. 설상 취업에 성공했다고 한들 자신에게 맞지 않는 직장일 가능성도 높다. 그

로 인해 많은 청년이 창업 시장으로 뛰어들지만 안타깝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을 닫는 경우가 허다하다.

뚜렷한 사업 아이디어와 전략 없이 무작정 시작할 경우 특히 그렇다.

 

그런데 여기, 자신만의 독특한 개성으로 위험천만한 창업의 길을 멋지게 걷고 있는 한 벤처 사업가가 있다. ‘

창업’을 디자인한다는 창업 디자이너  장미지 동문(산업디자인학과 05학번)의 창업 성공 스토리를 들어봤다.


  청년 창업 성공기, 

  이젠 너도 주인공
 
  “창업하고 싶다면 
  지금이 가장 적절한 시기
  동기가 동료 될 수 있어”
 

  ‘창업 디자이너’이자 컨설턴트로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장미지 대표에게 하루는 너무나도 짧다. 그렇기에 밤을 새우는 일이 허다하다는 그. 약간 피곤한 얼굴과 수수한 옷차림이 왠지 정감이 갔다. 일찍이 창업에 뜻을 둔 그가 자신만의 회사를 설립한 지는 햇수로 6년이 지났다. 창업 붐이 불던 시절 함께 시작했던 몇몇 동료들은 떠났지만 그는 확고한 디자인 철학으로 충무로의 젊은 벤처 사업가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이제는 창업 디자이너로서 새로운 길을 개척해나가고 있다.
 
 

  맞는 옷은 따로 있다
  “원래부터 단순하게 사는 것이 좋았어요. 재미있는 것만 찾아다녔죠. 전 진지하고 규칙적인 게 싫어요.” 애당초 딱딱한 회사생활에 흥미를 느끼지 못한 그는 대학 졸업 후 무작정 거리로 나섰다. 탁구공에 캐릭터를 그려 넣은 휴대폰 액세서리를 들고 인사동 거리에서 좌판을 벌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첫 사업은 실패였어요. 단기간에 몇천만 원을 손에 쥘 정도로 제품이 잘 팔렸지만요. 그 당시에는 스마트폰이 일반화되기 전이였기에 대부분 휴대폰 액세서리를 달고 다녔거든요. 그런데 유통업자와 재계약에 실패했죠.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모든 것이 서툴렀던 것 같아요.”

  사업이 장기적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일회성에 그치며 실패의 쓴맛을 맛본그는 주위 디자이너 동료들처럼 일반 회사에 취직했다. 그러나 창업의 매력을 알아버린 그에게 회사생활은 오래갈 수 없었다. “취업 후 모은 자금으로 창업을 시작하는 게 일반적이잖아요. 그런데 전 반대로 창업에 실패하고 회사에 취직했죠. 자유롭게 일하던 그때를 잊을 수가 없었어요. 조직 안에서 동료들과 견제하며 상사의 눈치를 봐야 하는 일이 너무 힘들었죠.”

  그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뒀지만 마땅히 하고자 하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생계를 이어가야 했기에 급작스레 요식업에 뛰어들었다. “무작정 부모님과 칼국수 가게를 열었어요. 정말 즉흥적이죠.(웃음) 그 당시 ‘백종원 신드롬’을 보고 가게를 차리는 이들이 많았거든요. 저도 그중 하나였죠. 그런데 생각보다 일이 재미도 없고 금방 질려버렸어요. 반면에 제가 전공했던 디자인은 적어도 재미가 있었거든요. 이리저리 방황하다 결국 ‘역시 내 길은 디자인’이라는 확신이 섰죠.”

  그의 전매특허인 레이스 명함과 조립식 명함이 2011년 ‘서울시청년창업1000프로젝트’에 선정돼 소액의 창업 지원금을 받으면서 제2의 인생이 시작됐다. 고심 끝에 그는 쥬얼리, 패션, 가구 등 활발한 디자인 시장 대신 경쟁도 적고 투자자금도 비교적 적게 드는 ‘프리미엄 명함’시장으로 뛰어들었다. “당시 레이저를 이용해 레이스 펀칭 디자인과 명함을 조립해 만드는 조립식 디자인 등으로 벤처 인증을 받았어요. 연이은 실패에다가 수중에 자금 한 푼 없었지만 아이디어 하나로 지원받아 창업하게 됐잖아요. 그래서 당시 포부가 엄청났어요. 제가 명함시장을 접수할 줄 알았다니까요.”
 
 
 
  종이 아닌 창업을 디자인하다
  지금은 유명 연예인의 명함을 제작하는 등 이름난 디자이너로 우뚝 섰지만 초창기에는 그도 창업 초보에 불과했다. “창업을 시작하니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일이 돈이더라고요. 자금을 아끼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일에 미쳐 살았던 것 같아요. 좁은 사무실에 간이식 침대를 두고 먹고 자고 했죠. 심지어 씻는 시간도 아까워 근처 목욕탕에 다녔다니까요.”

  창업 6년차, 가장 힘들었던 시기나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를 들려달라니 그는 마케팅의 중요성을 몰랐던 시기를 꼽았다. 장비를 구매하기 위해 직접 외국으로 출장을 다닐 정도로 디자인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찾는 이가 적었다. “또다시 망하는가 보다 했었죠. 그런데 우연히 한 고객에게 온라인 마케팅을 시작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조언을 받았어요. 그 후 현장 전시회보다 블로그 마케팅에 힘을 쓰기 시작했어요. 그러자 소비자와 접점이 더욱 늘어났고 결국 입소문이 타게 된 거죠.” 

  단순히 명함을 디자인하는 페이퍼 아트에서 그의 일은 끝나지 않았다. 비즈니스의 이미지를 구축해주는 것이야말로 ‘디자인’이라며 창업 디자이너로서 새로운 길을 걷게 된 것이다. “명함은 비즈니스 관계에서 아주 큰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명함을 아름답게 꾸며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고객의 비즈니스에 걸맞은 이미지를 제시해줘야 하죠.” 그는 비즈니스마다 제시하는 명함이 달라야 한다고 말한다. 같은 이름과 전화번호일지라도 명함에 따라 인물이 주는 이미지가 다르다는 것이다.

  “한 번은 복싱장 명함을 의뢰받았어요. 그들의 이미지를 대표할 수 있는 건 아무래도 복싱링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실제로 명함 자체를 복싱링 모양으로 조립했답니다. 섬세한 손기술이 필요해서 정말 힘들었어요.” 아무리 힘든 작업이라도 비즈니스를 가장 잘 대표할 수 있는 디자인이 있다면 꼭 해야만 직성이 풀린다는 그다.

  조심스레 기자의 명함도 내밀어봤다. “이거 딱 중대신문 명함인데요. 중앙대하면 의혈정신 아니겠어요.(웃음) 80,90년대 학생운동의 중심에 중앙대가 있었잖아요. 의혈정신이 돋보이는 제호네요.”

  현재 장미지 디자이너는 초보 창업자들에게 창업 컨설턴트로서 강연하기도 한다. 초창기에 자신이 겪었던 착오를 겪지 않았으면 하기 때문이다. “길바닥에서부터 지금까지 다양한 경험을 했죠. 이젠 제 경험을 바탕으로 창업을 시작하려는 이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싶어요. 예를 들어 마스크 팩은 의료용에서 뷰티용으로 뉴브랜딩하면서 대박이 났잖아요. 이처럼 창업 조력자로서 사업 아이템 개발 방향, 마케팅 방법 등을 제시해주는 것이죠.”
 
 

  더 멀리, 더 높이!
  “창업은 너무나도 매력적이죠. 그렇지만 아무 생각 없이 뛰어들었다가 수십억이 날라 가는 건 한순간이에요. 탄탄하게 준비되지 않은 창업은 그야말로 지옥이죠.” 창업 지식도 없이 유행하는 제품이라서 또는 잘 될 것이라는 긍정적인 사고만으로 창업 전선에 뛰어드는 것은 무모하다. 그러나 곁에 경험이 풍부한 길잡이와 매력적인 아이템이 있다면 도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창업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함께하는 팀원이라고 말한다. “만약 여러분이 창업을 고민하고 있다면 지금이 가장 최적의 시기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함께할 수 있는 동반자를 모으기에 대학은 적재적소이니까요. 함께 마음 맞춰 움직일 수 있는 지금이야말로 위험을 최소화한 창업을 시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해요.”
 
 
 
 위험을 감수하고도 다시 6년 전으로 돌아가도 창업을 할 것이냐는 질문에 그는 단호하게 ‘그렇다’고 말했다. “저는 다시 태어나도 창업할 것 같아요. 아니 더 일찍 시작하고 싶어요. 적절한 아이템만 있다면 학생 때 시작했을 거예요. 어린 나이에 창업한다면 더 큰 미래를 꿈꿀 수 있잖아요. 어찌 보면 창업은 체력싸움, 노력싸움이거든요.” 매사에 즉흥적인 그이지만 창업에 대해선 누구보다 확고했다.

  앞으로 그의 인생이 어떻게 디자인될지 궁금하다. “전 최선 말고는 생각을 하지 않아요. 당장 목표는 아날로그엔진을 중견기업으로 일궈내는 거예요. 현재 해외 서비스법인을 설립해 현재 영국, 미국, 일본 등 다양한 나라에서 활동하고 있죠. 아직은 시험단계지만 곧 한국 명함이 세계시장에서 주목받을 날이 오리라 생각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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