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래(경제78) 칼럼]
재협상하자는 美, 재합의 없다는 日


국민일보
입력 2017-07-16 17:31

 

 

남산 N서울타워도 ‘사랑의 자물쇠’가 명물로 꼽힌다. 세계 곳곳에 번지던 붐이 한국에도 뿌리내린 것이다. 치기 어린 젊은 연인들의 열정이 귀엽지만 조금은 안쓰럽다. 사실 물리적으로 상대의 마음을 잠가두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애틋한 연인들의 마음이 그러할진대 철저한 실리 위주의 국가 간 약속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우호와 협력을 말하고 미래를 함께 도모하자고 다짐한 약속이라도 어떤 계기를 만나면 한순간에 반전되는 게 다반사다. 요즘 한·중, 한·미, 한·일 관계가 꼭 그렇다.

한·중 양국은 1년 전까지만 해도 1992년 수교 이후 최고의 밀월관계를 자랑했다. 그러다 지난해 7월 박근혜정부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를 결정하자 중국은 크게 반발, 경제보복을 펴고 있다. 양국이 그간 주장해온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의 불편한 진실이다.

한·미 관계는 좀 더 미묘하다. 굳건한 동맹을 강조하나 관계가 늘 좋지만은 않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이 방미 정상회담을 통해 안정적인 한·미 관계를 재구축한 지 불과 12일 만에 미국 정부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을 공식 요청한 것은 뜻밖이었다.

한국 정부는 재협상이 아니라 개정 내지 수정협상이 맞는 표현이라고 한다. 핵심은 재협상이냐 개정·수정협상이냐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한·미 FTA에 대한 깊은 불신과 시정 요구이며, 양국 간 이해 다툼이 본격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부동산업자 출신의 철저한 비즈니스맨이란 점도 이번 요구의 배경일 터다. 그는 한·미 FTA 탓에 미국의 대한 무역역조가 심각하고 특히 자동차 철강 등 한국의 수출 분야는 문제가 많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그의 주장은 부분적이고 일방적이다. 우리가 실체를 구체적으로 거론해 대응한다면 맞받아치지 못할 바 없다.

예컨대 한국의 지난해 대미 무역흑자 276억 달러는, 3470억 달러 흑자를 낸 중국을 비롯해 일본 독일 멕시코 베트남 등보다 한참 적다. 최근 한국 내 미국차 수입증가율은 미국 내 한국차 수입증가율을 크게 웃돈다. 한국의 미국차 수입이 빠르게 늘고 있다는 얘기다. 반면 대미 수출 한국차의 절반 이상이 이미 미국 현지공장에서 생산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은 89∼95년 미국의 대일 무역압박과 매우 유사하다. 미·일 무역마찰은 60년대 섬유 부문에서 시작됐는데 80년대 말엔 자동차, IT·전자 부문의 대일 무역역조가 핵심 의제였다. 이에 미국은 엔고(高)를 지속적으로 유도하는 한편 대일 적자를 줄일 목적으로 ‘미·일 구조협의(SII)’ ‘미·일 포괄경제협의’ 등을 앞세워 일본을 강하게 압박했다.

당시 미국은 재정과 무역, 이른바 쌍둥이적자에 허덕이고 있었다. 미국의 무역적자는 국내 경제의 위축에서 비롯됐을 뿐 무역적자 탓에 경제가 위축된 건 아니었다. 그럼에도 압박은 당시 공화당의 로널드 레이건과 조지 H W 부시 대통령, 민주당 빌 클린턴 대통령으로 이어지면서 계속됐다. 미국의 대외경제정책은 민주·공화당의 구분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은 90년대 들어 경제가 회복되고, 일본이 잃어버린 20년이란 장기불황에 빠지면서 슬그머니 압박을 풀었다. 또 95년 세계무역기구(WTO)가 출범해 국제통상 규율이 마련된 점도 작용했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의 한·미 FTA 재협상 운운은 미국이 WTO 출범 이전 개별국가별 압력체제로 후퇴한 꼴이다. 오만한 미국의 한 단면이다.

동맹국이라도 실리 앞에서는 안면을 바꾼다. 우리도 좀 더 차분해져야 마땅하다. 앞으로 펼쳐질 한·미 FTA 재협상과 관련해 통상만능론을 되레 경계해야 한다. 한국이 대외무역으로 경제발전을 이룩한 것은 사실이나 그 폐해, 즉 수출·대기업과 내수·중소기업의 이중구조 내지 격차 문제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한·미 FTA는 내수·중소기업·복지·분배 강화 측면으로 작동될 수 있도록 개정돼야 한다.

한편 한·일 양국 또한 2015년 ‘12·28 위안부합의’를 둘러싸고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재합의를 주장하는 한국과 재합의 불가를 앞세운 일본이 대립 중이다. 우리로서는 위안부 해법이 통상문제와 달리 실리보다 명분과 가치를 우선해야 할 주제임을 유념해야 한다.

그럼에도 국가 간 합의라서 손바닥 뒤집듯 하기는 쉽지 않다. 재합의란 말보다 보완 내지 추가합의를 앞세우는 가치적 접근이 필요하다. 가치적 접근이란 기왕의 합의에서 평가할 부분을 평가하고 추가할 부분은 내세우는 지혜다.

사랑의 자물쇠에 미래를 의지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신뢰가 저절로 생기는 것도 아니다. 이웃의 마음을 얻는 건 결국 우리의 몫이다. 새 정부가 해야 할 일이 또 늘었다.

조용래(경제78) 편집인 jubi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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