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둘러싸고 요즘 말이 많다. 예술인 출신 장관인 데다, 이명박 대통령과의 관계가 화제가 되고, 거침없는 언행도 자주 구설에 오른다. 최근엔 한나라당의 차기 서울시장 후보가 될 것이란 소문마저 나오고 있다.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장관으로 지낸 1년은 어땠을까. 이런 걸 물어보려고 유 장관을 인터뷰했다. 26일 일요일 오전 광화문에 있는 장관실에서 2시간20분 동안 만났다.





 

-올해 58세인데, 인사치레가 아니라 정말로 열 살 이상 젊어 보입니다. 비결이 뭡니까.


“끊임없이 움직여요. 평생 습관인데 시간 나면 뭐든 합니다. 대학 때는 무조건 새벽 6시에 학교에 가서 두어 시간씩 발성 연습하고, 수업 듣고, 연극 하고 그랬어요. 펜싱·검도·승마·암벽 등반·윈드 서핑 등 안 해 본 운동도 없어요. 언젠가 연기에 필요할 것 같고, 또 건강을 위해서 했죠.”


-담배도 끊었다면서요.


“ 1980년대 초반인데, ‘베니스의 상인’이란 연극을 국립극장에서 했어요. 새벽까지 술 마시고 놀았는데 저녁 공연 때까지 목소리가 안 나오는 거예요. 완전 엉망됐죠. 그날 공연 본 분들은 저보고 목소리 관리도 못하는 배우라고 욕했을 거예요. 그때 뼈저리게 느꼈어요. 한순간이라도 방심하면 모든 게 날아간다는 걸. 그래서 담배를 끊었고, 밤 11시에 연습이 끝나면 강북에서 압구정동 집까지 대사를 외우면서 걸어 다녔어요. 뛰면서 호흡하고 말하는 법도 그때 배웠죠.”


-배우 생활을 하면서 정치하겠다는 생각을 한 겁니까.


“전혀 아닙니다. 배우하며 보람 있고 돈도 벌고 인기도 있었거든요. 그런데 선배들에게 떠밀려서 방송연예인 노조위원장을 맡았고, 중앙대 교수하고, 또 서울문화재단 대표를 하고 그러다 여기까지 오게 됐습니다.”


-차기 서울시장에 나온다고 하는데 맞습니까.


“올해 초부터 갑자기 그런 소문이 나서 당황스러워요. 지금은 장관일 하는 것만으로도 벅차니까요. 하지만 이 일 그만두면 다시 배우를 하게 될 것 같진 않습니다.”


-기회가 주어지면 출마를 거부하진 않겠다는 거군요.


“현실적으로 그런 일이 생기고, 분위기가 무르익고, 진지하게 검토할 일이 생기면 그때 가서 생각해도 늦지 않을 것 같은데요.”


-유 장관은 1990년 드라마 ‘야망의 세월’에서 이명박 배역을 맡은 뒤 이 대통령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 왔습니다. 유인촌의 성공은 이명박의 후광 효과에 불과하다는 말도 있습니다.


“부정하진 않겠습니다. ‘야망의 세월’을 할 때 인간 이명박에게 매력을 느꼈어요. 나도 그때 왕성하게 활동하던 30대였는데 ‘나보다 더하구나’하고 생각했어요. 말레이시아에서 드라마 촬영을 하는데 그분이 출장 와서 함께 밥 먹고 술 마셨는데 노는 것도 일처럼 합디다.”


-그게 무슨 소립니까.


“춤을 춰도 무진장 열심히 추어요. 몰입한다는 거죠. 새벽까지 그렇게 놀고 아침에 만나기로 했는데, 반바지 입고 한바탕 뛰고 나타나는 거예요. 참 지독한 사람이라고 느꼈죠.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당신이 시베리아를 개발하는 게 꿈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때까지 저는 배우를 최고 직업으로 여겼는데 갑자기 ‘야, 예술이 따로 없구나’싶은 생각에 건설업자가 되고 싶더라고요.”


-유 장관은 말 실수가 잦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국회에서 한 ‘사진 찍지마, 씨~’도 그렇고, 시위대한테 반말하지 말라는 핀잔도 듣고, 야구장에 시구하러 갔다가 야유도 받았죠. 아직까지 정치인이 못 된 겁니까.


“그럴 거예요. 정치적인 것에 대한 습관이 안 돼 있는 거죠. 전 부모님한테도 야단맞아 본 적이 없는데 국회 가서 정말 별소리 다 들었어요. 그런데 사진 자꾸 찍으니까 저한테 혼자 화를 낸 거나 마찬가지였는데, 제가 미숙한 거죠.”


-재산이 116억원이나 되던데 운입니까, 아니면 특별한 재테크를 한 겁니까.


“재테크 기술 없어요. 제 직업이 불안하니까 집사람이 알뜰하게 한 거죠. 제가 개런티가 높았어요. 90년대 광고에 출연해 남자 모델로는 최고인 3억원씩 받았으니까. 열심히 벌었고 집도 20년 전에 사서 가족들이 살고 있어요. 투기 같은 건 안 했어요.”


-21세기는 문화의 시대라는데 이명박 정부는 문화정책이 없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서울시장 때부터 그런 소리가 나왔는데 청계천 복구도 문화라고 볼 수 있는 거 아닌가요. 매연 자욱한데 바람 통하고, 남녀 데이트 하고, 가족들 나들이 하고, 그렇게 풍속도가 달라졌어요. 물론 건설이지만 그렇게 환경을 바꿔주면 새로운 문화가 탄생하는 거 아닌가요. 광화문 네거리에 건널목을 만든 거나 서울광장 등 그게 다 문화정책이죠. 그걸 불도저처럼 추진력 있게 한 건데 문화는 없고 건설만 있다는 건 정치공세예요. 4대 강 정비도 마찬가지죠. 수질이 좋아지고 환경이 나아지면 자전거 도로가 생기고 크루즈도 뜨고 국토환경이 바뀌는 건데, 이걸 대운하하고 연결시키니… 대운하는 물 건너 갔잖아요. 문화정책이 없다는 건 난센스입니다.”


-그럼 노무현 정부의 문화정책은 어떻게 평가하세요.


“그분들 취지에는 백번 공감해요. 문화복지, 얼마나 듣기 근사해요. 조금씩 나눠서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다 문화를 즐기게 해 주고, 시골에서도 예술의전당 수준의 공연을 보게 한다는데 누가 뭐라 하겠어요. 하지만 막상 혜택은 누가 가졌나요. 끼리끼리 가졌지. 실제로는 하지 않고 지원도 같은 편끼리 하면 좋은 정책 만들어 봤자 뭐 하나요.”


-문화정책에서도 편가르기 하는 바람에 혜택이 좌파 쪽에만 갔고, 문화인들이 분열했고, 그래서 취지가 흐려졌다는 말입니까.


“많은 예술가가 실제로 그러지 않았나요. 갈등하고 싸우고 문화 현장에서 좌와 우로, 친노무현과 반노무현으로 갈려 반목하지 않았나요. 영화를 봐도 그래요. 기술협회, 촬영협회 등 14개 단체는 지금도 정부 지원을 못 받고 있어요. 이름 없는 150여 개 단체는 지원해 주면서 전통과 역사를 갖고 있는 기존 제도권 협회는 철저히 배척했으니 이게 문제 아닌가요.”


-그럼 그걸 어떻게 해결할 겁니까.


“제 정책은 간단합니다. 다른 분야는 모르겠어요. 문화는 그러면 안 됩니다. 이념과 코드의 굴레에서 예술을 자유롭게 해야 합니다. 예술을 오직 예술로만 평가받게 해야죠. 그리고 정치적 성향을 가진 사람은 물러나야 한다는 겁니다. 예술로 목소리를 내야지 정치적인 구호나 반정부적인 비판을 문화 예술의 본령으로 삼아선 안 된다는 얘깁니다.”


-그래서 노무현 정부가 임명한 산하 기관장들을 내보낸 겁니까.


“그분들이 생각을 바꿔주면 좋은데, 안돼요. 우리가 어떤 정책을 세워도 현장에서 집행이 안 되니까요. 지난 1년간은 이걸 정비하는 데 모든 역량을 쏟았어요. 예술인 출신인 제가 취임해서 뭔가 나아질 줄 알았는데 피부에 와닿는 게 없다고 하는 걸 압니다. 하지만 정부 정책이라는 게 단계가 있고 절차가 있어서 갑자기 달라지는 게 아니에요. 올해부터는 제대로 일할 겁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 겁니까.


“선택과 집중이죠. 경쟁력이 있는 걸 적극적으로 밀겠다는 얘깁니다. 불평 안 들으려고 여기저기 찔끔찔끔 정부 돈 나눠주는 생계형 지원은 하지 않을 겁니다. 돈 조금 받아서 연극 만들어 놓고 흥행 안 되니까 빚만 더 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죠.”


-지원의 공정성 논란이 벌어질 수 있을 텐데요.


“그래서 직접 지원보다 간접 지원에 치중할 겁니다. 개별 작품이 아닌, 인프라와 교육에 초점을 맞추는 거죠. 작품 하나하나에 지원하니까 편파다, 코드다, 줄 세운다 말이 많아요. 그것보다는 좋은 작품이 탄생할 수 있게 싼 값에 공연장을 쓰게 하거나, 연습실을 개방하거나, 작가·작곡가 교육 과정을 만들거나 하는 근본적인 지원을 하겠다는 거죠. 미리 신청서 받아놓고 별 볼일 없는 작품에 무조건 지원하는 대신 사후 지원을 할 겁니다. 최근에 호평받은 ‘똥파리’ 같은 영화를 보세요. 평가가 좋으면 나중에라도 지원받을 수 있게 해서 작품에만 전념하는 풍토를 만들고 싶어요.”


-노무현 정부는 위원회 공화국이란 말도 있었는데 예술계에도 위원회가 많죠.


“앞으론 위원들에게 모든 걸 맡기고 공무원들이 뒤로 숨는 건 안 됩니다. 어떤 예술가가 다른 예술가를 평가하는 건 항상 편파시비가 있을 수 있어요. 위원들이 큰 방향을 정하면 실무적으론 공무원이 결정을 하고, 그에 대한 책임도 지게 하는 게 올바른 방향이죠.”


-소속 기관장을 1년 단위로 평가해 인사하겠다고 했는데 어떻게 하는 겁니까.


“예술의전당 화재를 보세요. 몇백억원의 국민 세금이 날아갔는데 책임을 안 집니다. 저는 이런 데 대해 반드시 책임을 물을 겁니다. 저희 부처 산하에 있는 34개 기관장을 평가하는데 누굴 바꾸겠다는 게 아니라 점수가 나쁘면 연봉이 깎이고 불이익이 갈 것이고, 잘하면 인센티브를 주는 거죠. ”


-그동안 가장 잘한 게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기무사터에 국립현대미술관을 유치한 게 중요하지만 그건 대통령의 결단이었고, 저는 운동선수들이 공부 안 하고 운동만 하는 걸 못 하게 한 거라고 봐요. 아이들이 운동하는 기계가 되면 안 되니까요.”


-앞으로 1년간 중점적으로 뭘 할 겁니까.


“건강한 인터넷 문화를 만드는 겁니다. 우리나라 인터넷은 이용자들의 문화가 기술을 못 따라가고 있어요. 지적재산권도 전혀 보호되지 않고, 인터넷상의 욕설과 비난 때문에 죽는 사람도 나오잖아요. 잘못된 겁니다. 저는 또 ‘국립’이름이 붙은 단체들이 예술인의 꿈과 자부심이 되도록 해주고 싶어요. 최근 개관한 명동예술극장은 대관을 안 합니다. 기획 공연만 합니다. 명예도 있고, 오디션에 붙으면 최소한 3개월 이상 먹고살 걱정 안 하게끔 해주렵니다. 변화의 시범 케이스가 될 겁니다.”


-존경하는 문화계 인사가 있습니까.


“초대 문화부 장관이신 이어령 선생이죠. 그분이 한국예술종합학교도 세우고, 문화의 패러다임을 바꾸셨어요. 끊임없이 아이디어 내고, 열정 넘치고, 뵐 때마다 혀를 내두릅니다.”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돈키호테)’의 꿈에 대한 구절을 좋아한다던데 본인이 돈키호테와 비슷합니까.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고,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우고, 잡을 수 없는 하늘의 별을 잡는다’는 구절이죠. 돈키호테와 제가 성향이 비슷한 것 같아요. 무엇보다 꿈이라는 말을 좋아해요. 어쩌면 집착일지도 모르지만 예술이 결국 꿈 아닌가요.”


대담=김종혁 문화스포츠 에디터

정리=최민우 기자 minwoo@joongang.co.kr>, 사진=조문규 기자


유인촌 장관 만나보니


유인촌 장관을 만나면서는 왜 그가 이명박 대통령과 그렇게 가까운지 궁금했다. 유 장관은 1990년 TV드라마에서 당시 샐러리맨들의 신화였던 MB(이명박) 역을 했고, 그 뒤 서로 돈독한 관계가 됐다. 여기까진 다 아는 사실이다. 한데 그 정도로는 이해가 잘 안 됐다. MB는 서울시장이 되자마자 서울문화재단을 만들어 유인촌에게 대표를 시켰다. 대통령이 된 뒤에는 장관으로 데려갔다. 파격적이다. 도대체 유 장관의 어디가 그렇게 맘에 들어서?


인터뷰를 하고 나선 나름대로 답을 얻었다. 내가 보기엔 유 장관과 이 대통령은 기질이 같은 사람들이다. 목표가 정해지면 어떻게 해서든 그걸 달성해야 하고, 목표가 없으면 스스로 만들어내고, 편안히 있으면 죄스럽고, 항상 뭔가 열심히 해야 하는 타입이다. 배우 유인촌은 밤 11시에 연습이 끝나면 강북에서 강남의 집까지 두 시간 반을 걸어다니며 대사를 외우고, 건강도 챙겼다고 한다. 지금도 가끔 광화문 청사에서 모자를 뒤집어쓰고, 선글라스를 낀 채 집까지 걸어간다. 뭐든 시작하면 끝을 본다. 그는 MB와 만났을 때의 느낌을 이렇게 말했다. “나도 지독한데 ‘참 나보다 더한 사람이구나’ 하는 걸 느꼈어요.”


그는 서울시장 출마설에 대해서도 부인하지 않았다. 그렇게 처신하면 경쟁자들의 무차별 공격이 시작될 것이라는 걸 별로 염두에 안 두는 듯했다. 정치적으로 매끄럽지 않다는 걸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 반대인 것 같았다. 유 장관은 자신이 MB의 후광으로 이 자리까지 왔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부인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는 아무래도 여전히 자유로움을 지향하는 예술인인 것 같았다. 스스로 돈키호테와 닮은 게 많은데 그 이유가 꿈을 꾸기 때문이라고 했다. 유인촌의 꿈은 과연 그를 어디로 데려갈까. 그게 MB의 꿈과는 어떻게 엮이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