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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3대 인명사전 트리플 크라운 달성

관리자 | 조회 수 1831 | 2009.09.09. 15:22


세계 3대 인명사전에 모두 이름을 올린 김봉현 동문

지난 8월 10일, 김봉현(의과대학 87학번)박사는 미국 인명연구소 ABI(American Biographical Institute)가 발간하는
 ‘21세기 위대한 지성 2010년판’ 추가 등재가 확정되었다.
또한 그는 올해 마르퀴즈 ‘후즈 후 인더월드’와 영국 캠브리지 인명센터 IBC(International Biographical Centre)의 ‘21세기의 탁월한 지식인 2000명’ 2009~2010년판에 이름을 올림으로서 세계 3대 인명사전에 모두 등재되는 영예를 안게 되었다.


세계 3대 인명사전 인물등재 증서들

아버지의 병환이 의사의 길로 이끌어
그가 의사가 되고 싶다는 결심을 한 것은 중학교 1학년 때부터였다.

“만성 폐질환을 앓고 있던 아버지가 호흡기가 안 좋아 자주 병원에 입원을 해야 했어요. 호흡이 불편한 아버지는 숨을 내쉬고 뱉는 것을 힘들어하셨는데 그런 모습으로 병실에 누워 있는 아버지를 볼 때마다 ‘내가 의사라면 얼마나 좋을까’ 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아버지가 위급하실 때 콜을 받고 달려온 의사는 위엄 있는 목소리로 간호사에게 처방을 내렸고 능숙한 솜씨로 아버지를 안정시켰다. 아버지의 나약한 모습과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환자 앞에서 카리스마를 내뿜는 의사의 모습은 어린 그의 가슴에 깊이 인식되었다.
어린 그의 눈에 병으로 고통 받는 환자와 가족에게는 의사가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신과 같은 존재로 비쳤다.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이 ‘나도 저런 의사가 되고 말 거야’하는 다짐으로 굳어져갔다.
그러면서 그의 아버지처럼 병을 앓는 사람들을 치료하여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풍선처럼 예쁘고 커다랗게 부풀어 올랐다.

의사로서의 소명과 사회 공헌을 위해
그는 중앙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병원 안과에서 안과전문의를 취득한 후, 1996년 목포 세인트 컬럼반병원에서 공중 보건의로 3년간을 보냈다. 그 뒤 전라남도 해안에 김안과에서 8년간 안과의 생활을 했다.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에게 목포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최초의 지방생활이었고 안과 영역 중에서도 백내장 부분에 집중적인 술기를 마스터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 곳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농어촌 지역의 대부분이 그렇듯 목포는 장, 노년인구가 많았다. 그런데다 목포는 항구를 끼고 있는 도시라 자외선 반사량을 다른 지역보다 많이 받았다. 이런 요인 때문에 다른 지역보다 백내장 환자의 발생 비율이 높았다. 그는 그곳에서 이들이 가장 많이 갖고 있는 안질환인 백내장을 진료하며 자연스럽게 백내장에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무엇보다 치료를 하면 할수록 흥미롭고 묘하게도 연구의욕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공중보건의 생활이 끝날 때쯤 그는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서울로 복귀하여 젊은 사람들을 위한 라식과 같은 레이저수술을 할 것인가, 아니면 장, 노년층에 많은 백내장과 눈 충혈에 대해 좀 더 연구하기 위해 계속 그 지역에 머물것인가? 고민을 많이 하였어요.”
이제 막 나름대로 백내장에 일가견을 갖게 된 그에겐 크나큰 고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장 노년층을 위하여 앞으로의 삶을 백내장과 퇴행성 안질환 퇴치를 위해 살기로 결정하고 인근 해남이라는 지역에 깊숙이 뿌리를 심게 되었다.
해남에 ‘해남김안과’라는 안과를 열고 열심히 지역주민을 위한 진료와 더불어 본격적으로 백내장과 노안 연구에 돌입하게 된다. 그러는 동안에도 더욱 더 나은 수술 술기를 개발하고 보급하는데 게을리 하지 않았다.

좀 더 전문적으로 ! 좀 더 체계적으로 !


하버드 의대 재직 시절

좀 더 체계적인 연구를 하고자 김 원장은 미국의 ‘하버대 의대’ 메사추세츠 안과병원에 전임의 직책을 받아 연구하게 되었다.
“어떤 사람이 1등 요리사가 만든 음식을 계속 먹었다면 나중에 이 사람이 1등 요리사와 똑같은 요리를 만들 수 있을까? 그럴 것이라고 믿는다면 큰 오산이다. 비법을 메모하고 부단한 연습과 실패의 시간이 지나가지 않으면 그는 1등 요리사가 될 수 없다. 1등 요리사의 음식을 먹어 본 것이 도움은 되겠지만, 곁에서 지켜본 것은 한계가 있다. 야구배트를 어깨에 걸치고만 있어서는 결코 타점을 올릴 수 없다. 끊임없이 배트를 휘둘러야만 타점을 올리고 팀을 승리로 이끌 수 있다. 직접 뛰어들어 몸소 실행하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얘기다.”
그는 하버드에 있으면서 들러리가 되는 것을 거부했다. 멀티미디어에 필요한 자료 수집을 하며 프로젝트 수행을 위해 머리를 짜냈고 뛰었다. 세계에서 유명한 백내장 수술의나 연구자들을 인터뷰해서 어느 적당한 곳에 어떻게 넣을 것인가. 단계별로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심했다. 그들이 백내장 수술 준비를 하는 동안 티칭을 했고 수술을 하는 동안에는 유심히 지켜보며 그들이 범하는 실수, 잘못된 점을 끄집어내서 체계화했다. 그리고 그것을 연구해 발표했다.
그리하여 그는 지난 2005년 미국 백내장 및 굴절수술학회(American Society of Cataract and Refractive Surgery)에서 최초로 사람 수정체에서 출생시부터 존재한 눈썹을 발견, 보고한 논문으로 우수포스터상을 수상하는 등 다수의 해외 수상기록을 보유하여 국내외 학계에서 전문성을 인정을 받았다.

2005년 미국 백내장 및 굴절수술학회에서 받은 상과 각종 트로피들

‘언제나 환자의 입장에서’ 그가 발명한 의료품들
그는 백내장 수술 시 사용하고 있는 ‘B.H KIM 안내경’을 세계 최초로 개발,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한국인의 이름으로 등록하기도 하였다. 백내장수술이 아8; 8; 없이 깨끗이 끝나기 위해서는 수술 중 안구내부의 면밀한 관찰이 꼭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까지 백내장수술 중 홍채 뒷면을 볼 수 있는 도구는 존재하지 않았다. 김봉현 동문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2006년부터 연구에 들어가 1년여만에 세계최초로 백내장수술 중 안구내부를 관찰할 수 있는 수술기구를 발명하였다. 이 안내경은 그간 의사의 감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을 안구 내 모든 조직의 관찰을 가능케 하여 수술 중 합병증을 예방할 수 있다는 학술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이외에도 실내조명만으로 안과 수술을 진행하여 오랜 시간 수술하여도 안구에 해가 없고, 수술 후 단 10초안에 시력을 회복할 수 있는 ‘적외선 수술 현미경’을 발명해 주목을 받기도 하였다. 이 ‘적외선 수술 현미경’은 할머니의 불편함 호소에 의해 발명하게 되었다고 한다.
“2003년 한 할머니가 ‘잘 보기 위해 백내장 수술을 하는데 왜 수술 후 바로 볼 수가 없고 다음날부터 봐야 하느냐’고 따지는 데 아이디어를 얻어 ‘적외선 수술 현미경’을 발명하게 되었다.”라고 얘기하였다. 그가 의사의 입장에서 진료과정에서 환자가 느끼는 불편을 덜어주려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에 말에 따르면 이 현미경의 가장 큰 특징은 기존 현미경이 광원으로 사용하던 가시광선 대신 눈에 미치는 독성이 거의 없는 근적외선을 이용했다는 점이다. 따라서 기존 가시광선 현미경의 경우 백내장 수술 때 수술 후 회복에 하루 이상 시간이 걸렸지만, 그가 개발한 현미경을 이용하면 회복시간을 10초 내로 대폭 단축할 수 있다.
또한 간접조명을 통한 자연스러운 동공 확장을 유도하기 때문에 동공 확장제를 과다하게 사용함으로써 발생할 수 있었던 심혈관계 부작용도 크게 줄일 수 있다고 김 원장은 주장했다. 김 원장은 앞으로 유럽에도 특허를 출원한 뒤 오는 2011년에 제품으로 상용화 한다는 계획이다.

징기스칸처럼 생각하고 행동하자 !
“그 넓은 땅을 정복하고도 왜 편하게 여생을 보낼 생각을 하지 않고 더 먼 곳을 향해 군대를 이끌었을까요?”
그의 인생의 멘토 징기스칸. 그의 말을 증명이나 하듯 그의 사무실 벽면엔 징기스칸이 정복했을 당시의 세계지도가 붙어 있었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으며 더 높은 이상향을 향해 달려가는 그의 용기와 야망에서 당신의 모습을 발견하였다.
징기스칸은 광활한 황무지를 떠돌아다니는 유목민으로 태어났고, 글을 읽지도 못할 정도로 야만스러운 웠다. 이처럼 불우한 유년시절을 보낸 그는 혹독한 생존환경을 극복해네고 여세를 몰아 세상을 향해 나아갔다. 그리고는 중국을 점령하고 아라비아와 시베리아, 독일과 폴란드에 이르기까지 대 제국을 건설했다.
이만큼하면 되겠지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징기스칸이 적들을 마주하고 있을때를 떠올리며 이미지트레이닝을 하여 자신을 채찍질한다고 한다.
그는 후배들에게 “중앙대학교의 자부심을 가지고 그리고 언제나 징기스칸처럼 당당하고 용기있게 행동하세요”라고 말을 남겼다.
그는 최근 13년간 연구해 온 ‘국소적 결막 절제술’, 눈미백에 관련한 활발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눈이 자주 충혈되어 고생하는 사람들을 위해 도움이 되는 수술법을 계속 연구하겠다”며 강한 의지를 밝혔다. 그의 끊임없는 연구와 노력을 통해 한국 안과계의 위상을 높이고 인류의 눈 건강에 공헌을 하길 기대해 본다.

*김봉현동문 프로필
Havard University 부속 Massachusetts Eye and Ear Infirmary
(메사추세츠 안과병원), Boston, USA 전임의
해남김안과 대표원장
세인트컬럼반병원 안과과장
대한안과학회 기획의원
중앙대학병원 안과전문의, 의학박사
중앙대학교 졸업

현 중앙대학교 안과 외래교수
대한안과학회 정회원
미국백내장 및 굴절수술학회 (ASCRS) 정회원
유럽백내장 및 굴절수술학회 (ESCRS) 정회원
미국안과학회 (AAO) 정회원

*김봉현동문 수상실적
2003년 대한안과학술대회 우수 학술비디오상 수상
2005년 우수논문상 수상(Washington, USA)
 -미국 백내장 및 굴절수술학회 ‘안과 수술 시 초보자가 범하는 실수들’ 논문
   우수포스터상 수상(Washington, USA)
  -미국 백내장 및 굴절수술학회 ‘출생 시부터 수정체에서 존재한 눈썹’ 논문
2006년 최우수 논문비디오상 수상(San Francisco, USA)
 우수 논문상 수상
대한안과학술대회 최우수 학술비디오상 수상
2007년 대한안과학술대회 우수 학술비디오상 수상
최우수 논문비디오상 수상(San Diego, USA)
대한안과의사회 공로상 수상
2008년 눈미백시술 발표
 B.H Kim 안내경 발명
2009년 제22회 아시아 태평양 백내장 굴절수술 학회 우수 논문상 수상
영국 IBC선정 히포크라테스 상 (International Hippocrates Award)수상
“21세기 2000명의 탁월한 지식인”에 선정
“21세기의 위대한 지성” 2010년판 등재
영국 IBC 선정, 예술, 과학, 통신 국제회의 명예대사 위촉
미국 ABI 선정, 탁월한 전문인상 의학부문 수상
마르퀴스 후즈후 인더월드 2009 인명사전 안과학 부문 등재
                                                                          취재 : 홍보대사 박설희(무용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