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동문/ 백용호(경제32) 국세청장

국세청 개혁, 원칙에 충실한 것이 정도(正道)



좀 늦었지만 취임을 축하드리며 당시 국세청 외부 인사라는 점에서 우려가 많았는데 지명을 받으셨을 때 소감은 어떠셨습니까?

전에 맡았던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은 임기가 3년으로 임기를 마칠 생각이었는데 1년2개월쯤 지난 시점에 국세청장으로 지명되어 공정위 업무를 못하게 된 것이 무척 아쉬웠습니다. 게다가 국세청장 자리가 5개월이나 공석이었고, 국세행정은 국민에게 직접적으로 연관이 되기 때문에 잘 수행해야 한다는 책임감도 컸습니다.

국세청 개혁에 관한 국민적 관심이 매우 큽니다
저는 청문회에서도 그랬고 직원들에게도 ‘개혁’이라는 말을 안 썼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어느 조직이든 주변 환경의 변화에 따라 같이 변화해줘야 하는 것이고, 국세청도 끊임없이 변화하는 과정 속에 있고, 그 과정에서 내가 할 역할이 뭔가가 고민이었습니다.
변화라면 조직내 직원 의식, 문화 이런 것도 변해야하고, 여러 가지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의 변화가 요구되고 있습니다. 그동안 국민의 신뢰를 못 받았다면 하드웨어보다는 소프트웨어부분에서 신뢰를 얻지 못한 것으로 봅니다. 청렴성이나 내부 인사의 파행 등이 국민에게 실망을 안겨주었습니다.
조직체계는 변화를 게을리 해서는 안 됩니다. 직원의식․문화의 변화에 초점을 두어 조치를 취하고자 했고, 취하는 과정 중에 있습니다.
본청의 국장 중 3명을 외부인사로 공모하고, 여성을 국세청 개청이후 최초로 국장으로 앉혔습니다. 여성을 쓰고 안 쓰고의 문제가 아니라 국세청 변화의 하나의 상징이고, 외부의 시각과 마인드를 수혈해가면서 의식을 변화하는 단초가 될 것으로 봅니다.
외부 전문가들로 국세행정위원회를 설치해 그분들의 도움으로 보완할 것은 보완하고, 인사투명성을 높이는 제도적 장치를 하는 등 소프트웨어에서 변화를 주고 있습니다.
하드웨어로는 본청은 좀 더 정책, 기획업무에 초점을 맞추고 대민서비스는 지방청으로 이양하며 여기에 따른 인력재배치 등을 추진 중에 있습니다.
이런 일들이 제대로 이뤄진다면 국민에게 납세의무를 이행하도록 하고 정부살림의 근간인 재원을 마련하는 국세청의 주요기능이 무리없이 수행될 것으로 보입니다.

취임당시 급격한 개혁에 대한 직원들의 우려가 컸다고 들었습니다
그것은 기우였다는 기사도 났었죠?(웃음) 개혁이라는 말을 싫어하는데, 세상의 이치는 급격한 변화는 오히려 저항만 가져오고 실패할 가능성이 큽니다. 순리에 따라 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조용한 카리스마’라는 별칭이 있는데 업무스타일을 어떠십니까
업무를 하는데 가장 우선시하는 기준은 원칙입니다. 모든 것은, 사회․조직도 마찬가지로 누구나 원칙은 다 알고 있습니다. 그것을 못 지켜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죠. 인사는 공정해야 한다, 청렴해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원칙인데 이것이 지켜지지 않아 문제를 일으킵니다. 그래서 어려울 때일수록 원칙에 충실 하는 것이 가장 정도(正道)라고 생각합니다. 원칙에 맞게 가자는 게 제 방침입니다.

국세청 개혁이 성공하는데 관건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제가 잘해야겠지요. 어느 조직이든지 선봉에 있는 사람이 잘해야 합니다. 실패한다면 기관장의 책임이고, 변화에 성공했다면 그것은 직원들의 공입니다. 국세청이 국민적 신뢰를 받는다면 그것은 직원들이 열심히 했기 때문이고, 실망을 준다면 그것은 기관장이 책임입니다.

내부적인 소통도 많이 강조하셨는데
제가 마음을 열고, 직원들을 믿으면 직원들도 처음에는 힘들겠지만 청장에 대한 믿음과 신뢰를 갖게 될 것이고, 그것이 소통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사람 사는 사회는 쌍방이라고 봅니다. 소통을 위한 제도나 장치를 만드는 것 자체가 소통을 막는 장애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중앙대 다니실 때 얘기를 하겠습니다. 경제학을 선택한 이유라도 있으십니까?

워낙 가난했습니다. 저는 중앙대의 신세를 많이 진 사람 중 하나입니다. 특차로 입학해서 졸업할 때까지 학비는 물론 생활비까지 얻어가면서 학교를 다녔지요. 그때는 내가 경제학자가 돼서 주변사람들을 배불리 먹고살 수 있게 만드는 것, 편안히 다리 뻗고 자고, 먹고 싶은 것 먹을 수 있게 살게 해주는 게 내가 할 몫이 아닌가 생각했었습니다.
유학도 중앙대에서 보내주었습니다. 졸업하고 외환은행에 근무하고 있었는데 당시 임철순 총장님께서 유학비와 생활비 등을 대주면서 유학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런 생각 때문에 경실련에 몸을 담으시게 된 건가요
제가 이화여대 교수로 있을 땐데 88올림픽이 개최되고 나서 부동산 투기가 심해졌습니다. 그때는 경제적 호황기로 경제성장률 12%에 달했는데 그 부작용으로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고, 사회적 갈등도 심화되는 등 급격한 경제성장에 따른 자본주의의 퇴행적인 모습이 보였습니다. 말 그대로 경제정의 실현을 위해서 역할을 하는 것이 조그만 책임이 아니겠는가 생각했습니다. 금융실명제, 부동산실명제를 주장했었고 실제 정책으로 현실화 됐었을 때 정말 기뻤습니다.

학자로서의 길을 계속 걷지 않고 현실에 뛰어들게 되셨습니다
86년 29세의 나이로 이화여대 교수가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정치를 하리라는 것은 꿈도 꾸지 않았지만 96년 15대 총선 때 출마하게 되었습니다. 그 출마가 제 인생을 바꾸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출마할 때 이대에 사표를 냈습니다. 실패하고 학교로 돌아간다는 생각도 안했고, 새로운 길에서 최선을 다한다는 생각이었는데 떨어졌죠. 이후 불안한 생활과 새로운 경험도 했었고, 기업체, 연구원, 정치권에도 있다가 2005년 이화여대에 복직이 아니라 재취업을 했습니다. 학교에 충실하려고 했는데 2년 만에 공직에 나오느라 또 비우게 돼서 면목 없고 학자로서 부끄럽습니다. 공직에서 최선을 다하고 결국엔 학교로 돌아가겠지요. 공직에서 느꼈던 많은 것, 현실과 결부된 그런 것도 학생들을 가르치는데 소재가 될 듯합니다.

마지막으로 학교와 동창회 발전을 위해서 한 말씀 해주시지요.
작년에 재단이 바뀌었는데 중앙대학교의 변화와 발전의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새 재단이 학교를 진정으로 발전시키리라 믿습니다. 경쟁시대에 이기기위해서는 재단과 학교관계자, 동창회가 3위 일체가 되어 서로 믿고 단합해야 합니다. 각 주체들이 에너지를 모아도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굉장히 불확실한데 모든 주체들이 합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글: 최은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