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과대학 김기정, 김경용 교수, 고인골 유전자 연구 세계에 인정받아

몽골 북동부, ‘도르릭 나르스’라고 불리는 지역에서 발견된 흉노 귀족의 대형 고분군에서 3구의 고인골이 발굴되었다. 약 2,000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이 고인골의 유전자를 분석해보니 2구의 고인골은 흉노족의 것으로 나타났으나, 다른 한 구의 고인골은 전형적인 유럽인의 것으로 밝혀졌다. 흉노 귀족의 대형 고분군에서 유럽인의 유골이 발견된 것이다. 즉, 당시 흉노족 사회에서는 한 사람이 죽으면 그 사람과 관련된 도구와 가축, 그리고 사람을 함께 묻는 순장 풍습이 일반적이었는데, 흉노족 귀족과 함께 유럽인이 순장된 것이다. 이 분석 결과는 ‘단순한 발굴’이 아닌 ‘엄청난 발견’이었다.
그동안 ‘그랬을 수도 있을 것이다’ 정도로 생각되어오던 가설이 과학적인 증거에 의해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이 증명은 실로 엄청난 반향을 이끌어냈다. 상상이 현실이 되는 순간, 그 파급력은 어마어마했고, 전 세계의 학자들은 열광했다.


<인터뷰 중인 김경용(첫번째 사진 좌),김기정(첫번째 사진 우)교수>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 그것이 꿈이자 목표였다'
중앙대 의대를 졸업하고, 본교에서 대학원 과정을 마친 김기정 교수와 김경용 교수는 고등학교 선후배 사이였다. 의사의 길을 택할 수도 있었지만, 이 둘은 기초(학문)에 뜻을 두고 학교에 남기로 결심 했다.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 그 것이 꿈이자 목표였다.” 고 말한 김기정 교수의 말대로, 이 둘은 당시만 하더라도 변변한 실험장비 하나 없었던 본교 연구실에서 의지 하나만 가지고 지도교수들로부터 교육과 연구에 대한 꿈을 물려받으며 미래를 준비했다.
하지만 현실은 말 그대로 ‘열악’했다. 물질적인 부분들이 꿈과 현실 사이에 큰 괴리를 만들기 일쑤였다. “하고 싶은 연구를 연구비 걱정 없이 마음 놓고 하는 것이 소원이다.”라는 푸념이 무거운 한숨을 더 무겁게 만드는 일이 많았다. 어느 분야에서든 연구비를 마련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지만 크게 돈이 되는, 즉 사업성이 다소 부족한 분야에서라면 연구비를 마련하는 것은 더 더욱 쉽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빚은 늘어만 갔다.

우연한 기회
좋은 기회는 대게 우연의 모습으로 다가온다고 했던가. 중앙문화유물연구소의 이광호 소장(생명과학과 교수)로부터 공동연구 제의가 들어왔다. 연구주제는 “고인골의 유전학적, 형질인류학적, 고고학적 연구를 통한 한민족의 기원규명”이었다. 고인골이란, 100년 이상 된 옛 사람들의 유골을 의미하며, 대게 무덤이나 땅 속에 묻혀있던 것이 주로 발굴의 과정을 통해 얻어지게 된다. 당시만 해도 유전학이든, 형질인류학이든, 고고학이든 아는 바는 전혀 없었던 것이 사실이지만, 김기정, 김경용 두 교수는 이 주제가 분명 흥미로운 주제임에는 틀림 없다 생각하여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로 결심한다.

순조로운 출발
이렇게 하여, 생물학, 철학, 고고학, 인류학, 화학, 수학, 법의학, 그리고 의학 분야의 박애자 교수를 비롯하여, 김기정 교수, 김경용 교수가 구성원으로서 참여하는 연구팀이 구성된다. 의과대학의 지원으로 국제적 수준의 청정실험실을 마련할 수 있었고, 연구비도 비교적 넉넉히 준비되었기에, 다양한 고인골 표본을 구할 수 있었다. 이 때 구한 표본들은, 몽골, 우즈베키스탄을 포함해 중앙아시아를 어울렀으며, 근대에서 신석기에 이르기까지 시기적으로도 다양했다. 다들 의욕 또한 왕성했기에 마치 순풍에 돛 단 듯, 연구는 순조롭게 진행되어갔다.

뜻밖의 연구 중단
추가로 러시아, 일본, 중국의 고인골 표본을 구하는 무렵, 때마침 연구비가 끊겼다. 두 교수는 당시의 상황을 ‘말 그대로 눈앞이 깜깜했다.’고 회상했다. 막막할 수밖에 없었다. 연구 진행을 위한 준비가 끝난 시점에서, 연구를 진행할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었다. 그렇다고 연구를 중단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부담은 늘어만 가고 연구 진행을 이어가는 것도 어려웠다. 근심은 쌓여만 갔다.
하지만, 궁하면 통한다고 했던가. 어느 날, 연구를 후원하겠다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큰 규모의 후원은 아니었지만, 연구를 계속할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더불어 연구팀들이 십시일반 연구비를 모아 조금씩이나마 연구를 이어갈 수 있었다.

끝이 없는 노력
연구 주제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이 시작했기 때문에, 연구 진행 단계가 아닌 연구 시작 단계에서부터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많은 책이라고 표현하기에도 부족할 정도의 ‘많은 책’을 읽어야 했고, 고인골에 대한 분석 방법조차도 모른 상태로 시작했기 때문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갖가지 방법으로 실험(?)을 감행했다. 심지어는 뼈의 입자를 얻기 위해 주방용 음식 분쇄기를 이용한 적도 있었다. 결국, 각고의 노력 끝에 고인골의 연구 방법을 완성해 나갈 수 있었고, 분석 과정에서 꼭 필요한 유골의 DNA 오염성분 제거 및 순수 DNA 증명 방법 등을 비롯, 세계에서도 독보적인 분석 방법을 완성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무모 했을지도 모르지만, 연구에 대한 두 교수의 순수한 열정이 결정(結晶)을 이룬 것이었다.

단순한 발견이 아닌, 창조에 가까운 발견
“하늘이 도왔다.”고 회상한다. 분석한 샘플은 총 3개였다. 양적인 면에서는 턱없이 모자란 수였다. 유럽과도 동떨어진 몽골 북동쪽 ‘도르릭 나르스’라는 지역의 흉노 귀족 대형 고분군에서 구한 3개의 고인골 표본들 또한 그저 흉노인의 유골로 분석이 되었다면, 이번 연구는 이처럼 학계의 큰 반향을 이끌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분석한 3번 째 유골이 유럽인의 유골로 분석이 되면서, 이번 연구는 단순한 발굴이 아닌 발견이자 과학적 증명이 되어버린 것이다.

논문이 게재되기 까지
이러한 결과가 나오기 까지 김기정, 김경용 두 교수는 노력은 끝이 없었다. 김기정 교수는 일주일에 한 번 집에 들를 정도로 밤을 새며 연구를 진행했다. 학부강의 중 갑자기 코피를 흘릴 정도로 몸 상태는 말이 아니었다. 그 다음, 이러한 노력 끝에 얻어낸 고인골의 유전자 결과와 분석자료를 바탕으로 고고학적, 역사적, 인문학적 의미와 유전자적 의미가 적절히 어울리는 논문을 완성하는 것은 김경용 교수의 몫이었다. 김경용 교수는 김기정 교수가 남은 실험을 준비하는 1년 동안 정말 많은 논문과 다양한 분야의 책을 ‘소화해야만’ 했다. 김 교수는 당시를 ‘지난 10년동안 읽었던 양보다 많은 양을 1년 안에 소화해야 했는데, 전혀 모르는 분야들을 이해하려니 머리에 쥐가 난다는 표현만으로 부족할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각고의 노력 끝에 논문을 제출하고 나니, 또 다른 과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연구 및 분석결과에 대한 ‘검증’ 과정이었다. 분석이 제대로 이루어진 것이 맞는지 에서부터 시작해 몽골에서 발굴 된 고인골이 맞는지, 사람의 것이 맞는지, 발굴 및 분석 과정에서 오염되지는 않았는지 등등 수많은 검증 절차를 거쳐야 했다. 특히 발굴 및 분석 과정에서의 오염 여부를 검증하기 위해서는 발굴팀 전원, 연구팀 전원의 DNA를 분석, 대조해야 했는데, 발굴팀에는 몽골 현지인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정해진 심사 기한은 정말 며칠 남지 않았기에, 이를 놓치면 논문게재가 취소될 수 있었으나, 이 또한 다행히 원만하게 해결되어 추가실험도 할 수 있었다. 분석 결과를 얻어내고 검증 과정을 거쳐 논문 게재 승인을 받기 까지 1년이 걸린 셈이었다.

노력의 결실
“Dead men can indeed tell tales, but they speak in a whispered double helix”

지난 100년간 의생물학분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개 잡지 중의 하나인 American Journal of Physical Anthropology와 세계 최고의 생명과학 데이터베이스인 Pubmed에 논문이 게재되자마자 미국 유명과학신문잡지인 Science News에 논문이 머리글로 소개가 되었으며, 미국 Discovery News 에도 소개가 되었다. ‘중앙대학교 의과대학’에서 완성한 이 논문이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게 된 것이다.

<지난 100년간 의생물학분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개 잡지 중의 하나인 American Journal of Physical Anthropology에 소개된 이번 논문>


<고인골 유전자 분석 연구 중인 김기정 교수(우)>

앞으로도 다양한 고인골 유전자 연구들을 통해 이번과 같은 값진 결과를 얻는 것과 더불어 학교의 위상을 높이는 데도 기여하고 싶다는 두 교수는, 마지막으로 “연구를 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하고 싶은 일이기 때문에 늘 마음이 설렌다. 그것이 또한 어려운 상황을 이겨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고 생각한다. 후배 여러분들도 꼭 본인이 하고 싶은, 좋아하는 일을 찾기를 바란다”며 응원의 메시지 또한 잊지 않았다.
고인골 유전자연구란?
생명체에 있는 DNA는 생명체가 만들어지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개체를 국소적으로 조정하여 전체적으로 하나의 큰 틀을 가진 형태로 발전하게 된다. 이 DNA 에는 40억년 이상의 역사가 포함되어 있어 우리의 지난 과거의 역사를 알 수 도록 도와준다. 이를 통해 고대 생명체의 환경과 변화, 다양한 생명체의 탄생과 멸종을 확인할 수 있고, 최종적으로는 유전적 변화를 유발하는 환경으로부터 인류의 건강과 복지를 도모할 수 있도록 해준다.
그 중 김기정,김경용 교수가 하고 있는 연구는 이중 비교적 짧은 시기에 해당하는 1만년 이내의 아시아 지역에서 출토된 사람뼈를 대상으로 형질인류학 뿐만 아니라, 유전자, 단백질, 화학성분 등을 분석하여 한반도 및 아시아 인류의 연관 관계를 분석하는 것. 의학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현존하는 각종 질병이라는 것이 과거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적 요소로 인해 발생하는 것이 많은데 질병의 유전적 역사규명을 통해 질병의 이해를 도모하여 우리에게 건강한 삶을 위한 방안을 마련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취재 및 촬영 : 홍보대사 정성엽(광고홍보학과05), 이세영(영어교육학과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