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래 칼럼] 히로시마 방문, 개인기로 할 셈인가 기사의 사진

 

미 국립항공우주박물관은 스미스소니언재단이 운영하는 19개 박물관 중 가장 인기 있는 곳이다. 워싱턴DC에 있는 본관과 더불어 버지니아주의 워싱턴덜레스 국제공항 옆에 위치한 별관, 스티븐 F 우드바-헤이지 센터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별관은 2차 대전 종전 50주년 기념이벤트를 둘러싼 논란으로 큰 주목을 끌었다. 당초 박물관 측은 히로시마에 원폭을 투하한 B29 폭격기, 일명 ‘에놀라 게이’의 전시를 포함한 ‘원폭기획전’을 모색했는데 재향군인회, 공군협회, 정치권, 미디어 등이 거세게 반발했다. 

기획 원안인 ‘역사의 기로: 2차 세계대전의 귀결, 원폭 그리고 냉전의 기원’은 논란 끝에 ‘일본이 시작한 전쟁의 종결’로 대폭 수정됐다. 비판자들은 그래도 성이 안 차 재단에 압박을 더했다. 결국 기획전은 중지됐고, 3년간 기획전 준비를 총지휘했던 마틴 하윗 관장은 쫓겨났다(마틴 하윗, ‘거절된 원폭전-역사 속의 에놀라 게이’, 1996). 

비판자들은 기획전이 미국의 신성한 애국심을 폄하했다고 봤다. 원폭 투하가 종전을 앞당겼고 더 많이 발생했을 희생자를 줄일 수 있었다는 이른바 미국의 ‘원폭신화’는 건재했다. 조금이라도 이를 거스르는 언동은 수용될 수 없었다. 현재 에놀라 게이는 별관에 전시돼 있지만 자세한 배경설명은 없다.

이른바 미국판 역사 바로세우기의 좌절이다. 하윗은 그리 된 원인을 우선 히로시마·나가사키에서 벌어진 무고한 죽음에 대한 문제 제기가 비판자들에게는 지나치게 일본에 동정적인 입장으로 비쳤다는 데 둔다. 또 지난 전쟁 중 일본군부와 천황이 저지른 전쟁범죄, 즉 세균전 남경학살 일본군위안부 등에 대한 책임문제가 미해결 상태임을 자세하게 다뤘다는 점도 비판자들이 버거워했을 것이라고 봤다.

원폭 투하는 시시비비거리가 될 수 없고, 마찬가지로 일본의 전쟁책임도 그들 입장의 문제이니만큼 일부러 거론할 필요는 없다는 주장이다. 이처럼 미국의 주류 시각이 역사수정주의에 빠져 있고 나아가 일본이 늘 강조해온 ‘전쟁 피해자론’과 맞닿아 있다니 기가 막힌다. 

2차 대전의 전화(戰禍)가 격심했던 일본 곳곳에 마련된 기념관에는 전쟁의 참화와 피해상황만 가득하다. 야스쿠니신사의 전쟁기념관인 유슈칸(遊就館)은 말할 나위도 없고, 히로시마평화기념자료관, 나가사키원폭자료관, 오키나와평화기념자료관 등의 설명에는 누가 벌인 전쟁이며, 왜 이 전쟁이 시작됐는지는 물론 제3국의 피해 규모와 같은 내용은 한 구절도 찾아볼 수 없다. 시종 일본은 스스로를 전쟁 피해자였노라고 외칠 뿐이다.

이런 와중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오는 27일 히로시마를 방문한다. 최초로 핵무기가 사용된 곳, 그로써 십수만명의 시민들을 불구덩이로 내몰았던 부끄러운 인류역사의 현장, 히로시마. 원폭 투하를 명령했던 미국의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현장을 방문해 피해자를 추모하겠단다. 대단히 기념비적인 행보다.

하지만 미국·일본에서 역사수정주의가 주류인 지금 오바마의 히로시마 행보는 아베 총리와 그의 추종자들에게 지난 전쟁책임에 대한 면죄부를 주는 꼴이 되기 십상이다. 더구나 취임 초 거론한 ‘핵 없는 세상’과 더불어 퇴임 직전 ‘히로시마 방문’으로 마무리를 치장하겠다면 곤란하다. 히로시마에서 할 오바마의 발언이 중요해지는 이유다. 

오바마는 미·일의 역사수정주의를 지적하고 피폭자가 일본인뿐 아니라 한국인 등이 적지 않았던 배경과 그들의 치러야 했던 아픔을 직시해야 한다. ‘히로시마 방문’이란 개인기로 어물쩍 책임전가를 해선 안 된다. 뒤틀어진 역사를 섣부른 개인기로 뛰어넘을 수는 없다. 

조용래 편집인 jubi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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