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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래(경제78) 칼럼] 미운 6월에 현충일을 맞다

“기업 사회 국가 움직이는 중심 가치는 생명이라야… 그 고백과 참회 절실하다”

 

유월이면 꼭 생각나는 노래가 있다. 마산 출신의 시인 김용호(1912∼73)가 쓰고 조두남이 곡을 붙인 ‘또 한 송이 나의 모란’이다.
 
“모란꽃 피는 유월이 오면/ 또 한 송이의 꽃 나의 모란/ 추억은 아름다워 밉도록 아름다워/ 해마다 해마다 유월을 안고 피는 꽃/ 또 한 송이의, 또 한 송이의 나의 모란.” 
 
가슴을 아리게 하는 시어 덕분인지 김진균, 구두회 등도 곡을 붙였다. 조두남 곡은 나중에 불거진 그의 친일 논란 탓에 빛이 바랬다. 그 때문인지 몽환적인 김진균 곡이 더 좋다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래도 음악교과서에 실리기도 한 조두남 곡이 더 익숙하다. 노랫가락에 대한 감촉은 각각 달라도 그 시어에 담긴 사연만은 분명하다. 

원래 이 시의 주제는 6·25전쟁의 비극이다. 김용호는 51년 출간한 시집 ‘푸른 별’의 2판을 56년 내놓는데 맨 앞자리에 핏빛 6월의 아픔을 붉은 모란에 빗댄 이 시를 추가한다. 모란은 5월에 피지만 김용호 시인의 모란은 6월이다. 미운 6월의 붉은 꽃이라야 했나 보다. 

기묘하게도 56년 4월 정부는 그해 6월 6일을 현충기념일로 지정한다. 그 날은 마침 24절기상 망종(芒種)이었다. 기념일을 그리 정한 것은 우선 6·25전쟁의 희생자를 기리고, 또 과거 망종 때 조상에 대한 성묘와 제사를 지냈다는 역사기록이 있다는 점도 고려한 듯하다. 

40여만명의 국군장병이 산화한 6·25전쟁에 대한 국가적 추모가 그제야 시작된 것이다. 기념일은 75년 현충일로 개칭됐고 추모대상도 국군장병뿐 아니라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애국선열로 확대된다. 죽음으로 나라에 충성한 이들을 드러내는 날은 그렇게 뿌리내렸다. 

과거를 되짚어보는 이유는 현충일의 의미가 오늘 더 절실해졌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망종에 담긴 뜻을 따져봤으면 싶다. 망종은 씨뿌리기의 절기로 알려졌는데, 볏과 곡물의 낱알 껍질에 수염처럼 달린 까끄라기를 가리키는 망(芒)과 씨앗 종(種)으로 이뤄졌다. 볏과 식물의 씨앗을 뿌리는 절기로서 실제로 이때를 전후로 보리를 베고 모내기도 한다. 이렇듯 보면 망종은 생명의 계절이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니다.

망종이 생명과 깊이 연계돼 있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현충일의 본질도 생명이다. 희생당한 선열과 국군장병을 추도하는 것 이상으로 이 나라의 모든 생명이 그 누구도 해를 당하지 않도록 감싸고 지키는 것이 현충일의 실체일 것이다. 생명의 열매를 거두는 보리 베기와 새로운 생명을 심어 가꾸겠다는 모내기에 담긴 절기의 의미를 더욱 곱씹어봐야 하는 이유다. 

세간을 달구고 있는 19세 청년의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 사고사, 이유도 없이 도심 한복판에서 살해당한 23세 여성, 남양주 지하철공사장 사고사 등을 비롯해 속절없는 죽음은 끝이 없다. 여기에 세월호 참사도 빼놓을 수 없다. 이 참담한 상황 속에서 공통적으로 확인되는 것은 생명보다 돈과 이익을 중시했던 결과라는 점이다. 바로 우리의 자화상이다. 

나를 지켜주지 못하는 공동체, 우리를 내쳐낼 것처럼 몰아세우는 국가를 온몸으로 지켜보는 이들의 울음은 이제 분노가 되어 흙·동·은·금수저 논란과 겹쳐지고 있다. 자신들이 버림받는 게 아닌가 생각하는 지금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조국은 어떤 의미일까. 그렇게 보면 ‘임을 위한 행진곡’을 어떻게 부를 것이냐를 두고 강짜를 부렸던 보훈처와 그 추종자들의 주장은 현실불감증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기업 사회 국가를 움직이는 중심 가치는 생명이라야 한다. 미운 6월에, 우리 사회는 노래를 듣고 부를 기력마저도 무너져가고 있다. 고백과 참회가 그 무엇보다 절실한 까닭이 바로 그것이다. 어제는 망종, 오늘은 제61회 현충일이다. 

조용래 편집인 jubi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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